흰 바탕 위에 푸른색으로 한반도 지도를 그려넣은 일명 ‘한반도기’는 1991년 이후 스포츠 분야 남북 교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해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남북이 1945년 분단 후 처음 단일팀을 꾸렸다. 전 세계를 향해 ‘원 코리아(One Korea)’의 비전을 제시할 메신저로 남북은 한국의 태극기나 북한의 인공기 대신 한반도기를 택했다.

◆"통일한국 국기 상상해보라" 주문에 외국인 대거 응모
13일 화해평화연구소에 따르면 이렇게 처음 등장한 한반도기는 2000년 호주 시드니 올림픽, 그리고 2004년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 당시 한국팀과 북한팀이 개막식장에 나란히 입장할 때 또 쓰였다.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시절엔 오랫동안 자취를 감추기도 했으나 문재인정부 들어 열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은 거의 10여 년 만에 한반도기가 다시 출현, 전 세계에 ‘한반도 평화’의 대의를 알렸다.
남북이 하나가 된 뒤 ‘통일한국’의 국기는 무엇이 될까. 당연히 한국이 사용해 온 태극기를 계속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대부분이겠으나 ‘통일’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을 새 국기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마침 이달 말까지 광주에서 열리는 ‘2019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일환인 ‘한반도 평화통일 국기전’(기획 강철 큐레이터) 행사가 눈길을 끈다.
‘디자인으로 새로운 한반도를 디자인한다’라는 모토 아래 기획된 이 전시회는 외국 디자이너들한테 ‘통일한국의 국기를 한 번 상상해보라’는 과제를 던지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결과 세계 32개국의 총 63개팀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어떻게 디자인으로 형상화할 것인지 고심한 끝에 나름의 ‘한반도 통일국기’ 디자인을 만들어 출품했다.

먼저 눈길을 끄는 건 출품자의 ‘국적’이다. 독일에서만 개인과 단체를 포함해 총 8팀이 작품을 응모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 후 동·서독으로 갈라져 수십년간 분단의 아픔을 겪었기에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것으로 풀이된다. 마침 올해는 냉전과 분단의 상징이던 베를린 장벽의 붕괴 30주년이고, 내년은 독일 통일 30주년이란 점에서 독일 디자이너들의 참가는 의미가 남다르다는 평가다.

독일의 뒤를 이어 한국의 동맹국인 미국에서 6팀, 한국과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서 5팀, 그리고 공공 디자인 분야의 세계적 강국인 네덜란드에서 4팀 순으로 많이 참여했다.
◆언어 아닌 디자인으로 '통일'을 표현… "의미있는 시도"
통일부와 함께 이번 전시회를 후원하고 있는 화해평화연구소 전수미 소장(정치학박사·변호사)은 “기존의 한반도기는 국민의 선택이 아닌 남북한 실무자들끼리의 합의로 인해 결정된 것이라는 점, 울릉도와 독도가 누락되어 있다는 점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한반도기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어 “남북한뿐만 아니라 전 세계 디자이너들이 만든 한반도 상징 깃발 디자인들을 놓고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들은 한반도 문제의 재조명뿐만 아니라 국민과 세계가 함께하는 축제의 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이번 전시회의 의의를 설명했다.
전 소장에 따르면 이 행사는 총 3부작으로 된 야심찬 프로젝트의 일부다. 지난 2013년 국내작가 편을 이미 실시했고 올해 해외작가 편에 이어 오는 2025년을 목표로 북한작가 편까지 추진한다는 복안이다.

현재 아주대 겸임교수로 대학생들한테 북한, 그리고 통일에 관해 강의하는 전 소장은 “일부 20대 젊은이는 ‘북한은 불량국가인데 왜 우리가 비용을 부담해가며 통일을 해야 하는가, 그냥 이대로 살면 안 되는가’ 반문하기도 한다”며 “그래서 먼저 우리는 북한에 대해 알아야 하고, 나아가 남북한이 공유하는 문화 영역이란 접점을 통해 교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민주평통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이번 전시회에 대해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 통일을 희망하는 마음, 겨레를 사랑하는 마음은 모두 매한가지이지만 떠올리는 이미지는 제각각”이라며 “이러한 동상이몽을 ‘통일’하는 수단으로 언어가 아닌 이미지로 표현하는 통일 국기 디자인의 미래는 중요하고 수준 높은 주제”라고 높이 평가했다.
한반도 평화통일 국기전은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전시가 끝나면 경기 김포 보름산미술관으로 장소를 옮겨 서울 등 수도권 시민을 대상으로 통일 담론 확산을 이어간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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