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군이 시리아에서 철수한 뒤 터키의 공격을 받아 풍전등화 위기에 몰린 쿠르드족은 ‘중동의 집시’ 또는 ‘세계 최대의 나라 없는 민족’으로 불린다. 3000만∼4000만명에 달하는 아리안계 단일 민족이 고유의 문화와 언어를 갖고 있음에도 아직 독립국가를 건설하지 못한 채 터키 남동부와 시리아 북동부, 이라크 북부, 이란 남서부, 아르메니아 남서부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쿠르디스탄’이라는 독립국을 세우려다 좌절한 쿠르드족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립 국가 보장 약속을 믿고 서방 국가들과 함께 싸웠다. 그러나 전후 연합국과 동맹국이 서명한 세브르 조약이 파기되면서 중동 각지에 흩어져 독립운동을 이어왔다.
쿠르드족은 2014년 9월 시리아 북동부의 자치지역 보호를 위해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 뛰어들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쿠르드 민병대 ‘인민수비대’(YPG)가 효과적 전투수행으로 미군 자문관들 눈에 든 것이다. 미군으로부터 훈련받고 무기·장비를 지원받은 YPG는 IS와 전쟁을 맡은 시리아민주군의 주축을 이뤘다. 이들은 2017년 IS의 수도였던 락까를 장악했고 올해 3월 IS 최후 거점이었던 바구즈를 함락할 당시에도 맹활약을 했다. IS 격퇴 과정에서 모두 1만1000명가량의 쿠르드 전사가 사망할 정도로 희생도 컸다.
그러나 쿠르드족이 시리아에서 세력을 확장하며 독립국가 건설 가능성을 키우자 주변국들이 견제하기 시작했다. 특히 가장 많은 1500만명의 쿠르드인이 거주하고 분리주의 무장단체 쿠르드노동자당(PKK)의 영향력이 상당한 터키가 YPG를 눈엣가시처럼 여겨왔다.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공격에 나선 터키는 시리아 북부와 터키 접경지역에 완충지대를 만들어 쿠르드족을 쫓아내고 시리아 난민을 재정착시키려 하고 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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