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년 10월12일 이루어진 이탈리아의 통일은 얼핏 신명이 나지 않는 경사다.
유럽 일대와 북아프리카에 걸친 로마제국의 기억이 너무 뚜렷해서다.
하지만 ‘로마제국’이라는 막이 내린 뒤의 이탈리아 반도는 마치 병들어 바다에 떠있는 대어처럼 온갖 물고기에게 뜯어 먹히는 세월이 이어졌다.
북부는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북방 강대국이 땅을 주거니 받거니 했고, 남부는 이슬람, 노르만(바이킹), 십자군, 스페인, 프랑스 등 해양세력이 어지럽게 드나들었다.
그런 판에 침략세력을 몰아내고 통일을 이룬다는 것은 로마제국을 건설하는 것 못지않게 어려운 일이었다.
다행히 1848년 프랑스에서 2월혁명이 일어나는 등 유럽이 격동하던 시점에 3명의 걸물이 힘을 합쳐 통일에 매진할 수 있었다.
1847년 ‘리소르지멘토(부흥 )’지를 발간해 사보이가(家)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의 통일운동에 나선 카밀로 카보우르, 탁월한 군인과 혁명가를 겸한 주세페 가리발디, 혁명의 이론가 주세페 마치니가 그들이었다.
그들은 이념이 일치한 것도 아니다. 카보우르는 사보이가(훗날 사르데냐 왕국)에 충성하는 왕당파로서 사르데냐 왕국에 의한 통일을 지향했고, 가리발디와 마치니는 공화파였다.
그럼에도 가리발디는 민병대인 ‘붉은 셔츠 단’을 이끌어 이탈리아 남부를 통일하자 그 지역을 사르데냐 왕국에 바침으로써 1861년 3월17일 이탈리아 왕국이 탄생했다.
‘이탈리아’라는 명칭은 로마 초기 이탈리아 남부에서 송아지를 상징하는 이탈리라는 지명에서 유래한 것이다. 로마의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늑대가 이제 송아지로 바뀐 셈이다. 가리발디가 그 뒤 베네치아에서 오스트리아를 몰아냄으로써 통일은 완성된다.
한 세기 뒤 이탈리아는 ‘붉은 셔츠단’을 모방하듯 파시스트의 ‘검은 셔츠단’이 설치면서 빈사상태에 빠진다. 하지만 그 덕분에 이탈리아 왕국이 몰락해 공화제로 가게 됐으니 가리발디의 비원이 뒤늦게 이루어진 것일까.
양평(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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