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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10월은 마무리를 향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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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0-04 22:24:19 수정 : 2019-10-04 22:2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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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마르셀 뒤샹은 기성품 소변기를 ‘샘’이란 제목을 붙여 뉴욕의 한 화랑의 전시회에 보냈다. 물론 전시가 거부됐고, 그 이유는 예술가의 표현행위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뒤샹은 자신이 선택했고, 그것을 예술작품으로 결정했으며, 제목을 붙여 전시장으로 보낸 행위만으로도 예술적 표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 일을 계기로 예술계에선 작품의 창작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술가의 손에 의해서 물리적인 제작으로 이루어져야만 하는가. 뒤샹의 말처럼 예술가가 선택해서, 결정하고, 전시장으로 옮기는 행위만으로도 창작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였다. 모든 예술가들이 물리적인 제작을 한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서 ‘이젠 됐다’라고 생각하고, 물리적인 제작행위를 멈춘다. 그때까지 제작한 대상을 미술작품으로 내놓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 뒤샹의 말을 적용해 본다면, 예술가가 어느 시점의 대상을 선택하고 작품으로 결정하는 것이 물리적인 제작 행위보다 작품창작에서 더 중요하다는 의미가 된다.

마르셀 뒤샹의 ‘샘’

다다이즘이라는 반(反)예술 운동은 이렇게 탄생했다. 전통적인 방법을 부정하는 실험적 미술의 수준을 넘어 미술자체까지도 부정하려는 시도였다. 지금까지 예술을 지배한 모든 주의, 주장, 미학을 배제한 채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롭게 예술적 가치 창조의 길을 모색해 보자는 것이었다. 이런 뒤샹의 시도가 기성품을 재료로 사용한다든가, 예술가의 행위 자체를 작품 구성요소로 강조하는 경향에 영향을 주었고, 현대미술의 풍성하고 다양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나 복잡한 상황에 부딪칠 때 지난 일을 지워버리고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올해도 4분의 1만 남겨 놓은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 같다. 연초에 마음먹었던 일을 되돌아보고, 다시 각오를 다지게 된다. 지금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새로운 미술을 향한 뒤샹의 시도가 풍성한 결과를 만들어냈듯이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을 보며 새로운 마음을 가져 보자.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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