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에 사는 직장인 A씨는 도로에서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용문시장 인근 교차로에서 선글라스를 낀 한 여성이 유아용전동차에 탄 채 4차선 도로를 자전거보다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 앞에는 한두 살이 채 안 돼 보이는 아이 둘까지 함께 타고 있었다. A씨는 “평소 이 도로 4차선은 버스와 오토바이, 자전거 등이 한데 뒤섞여 주행하기 때문에 사고 위험이 높은 지역”이라며 “안전 장치도 없이 두 아이를 태운 채 유아용 전동차로 주행하는 모습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고 말했다.
전동킥보드, 전동휠 등 개인형 이동수단(PM)이 일상화하면서 부모와 아이가 함께 탈 수 있는 ‘패밀리형 전동차’ 같은 새로운 형태의 개인형 이동수단이 등장하고 있지만 관련 규정 미비와 개인 이용자의 부주의로 안전사고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18일 유아용전동차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패밀리형 전동차는 유아용 전동차에 전동킥보드를 결합한 형태의 제품이다. 한번 충전 후 30㎞ 이상 운행 가능하며, 최대 시속 15㎞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 또 어른 2명에 아이 1명까지 최대 3인이 탑승가능하다. 한 업체는 “유모차와 킥보드, 전동차 등 세 가지 기능이 합쳐져 있고 가족 모두를 위한 생활 이동수단”이라며 “아이들 등하원이나 산책, 장보러 갈 때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통상 개인형 이동수단은 도로교통법상 원동기장치자전거로 분류되기 때문에 보도와 차도가 구분된 도로에서는 차도를 이용해야 한다. 또 안전모를 반드시 착용해야 하며, 16세 이상, 운전면허 소지자만 사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제품은 킥보드와 달리 완구로 승인받았기 때문에 도로나 공원 등을 이용하는 데 별다른 제약이 없다는 게 해당 업체 측 설명이다. 업체 관계자는 “다만 안전문제상 일반 차가 다니는 도로 이용은 권장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전동기가 달린 모든 개인형 이동수단은 자동차로 간주되기 때문에 형식승인이나 안전기준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도로 이용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제품별로 특별법 제정이나 안전기준 신설을 통해 이용을 허가한다. 아직 국내 현행법에는 특정 교통수단의 도로 통행을 제한하는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다.
이러다 보니 해당 제품을 이동수단으로 활용하는 일부 이용자들이 안전장비 없이 무리한 통행을 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6월 한 운전자는 온라인 자동차 커뮤니티에 아찔한 경험담을 올렸다. 이 운전자는 “평소 자주 다니는 아파트 길목에서 유아용 전동차를 몰던 아이 어머니가 갑자기 튀어나와 부딪칠 뻔했다”며 “헬멧도 없이 무릎 사이에 아들을 태웠더라. 차량 운전자 시야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고 워낙 빠른 속도여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며칠 뒤도 그 모자를 목격했다. 아이의 안전을 위해 어디에 신고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형태의 개인형이동수단이 등장하는 만큼 그에 맞는 제도개선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명묘희 도로교통공단 책임연구원은 “규제가 모호한 사각지대 상태에 있는 제품들이 많다”며 “도로 이용에 적합한 제품인지 판별한 후 각 제품별로 사용 시 갖춰야 할 안전기준, 면허 필요 여부 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정립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전제호 책임연구원은 “새롭게 등장한 교통수단에 대한 정의가 없다 보니 혼란이 발생한다”며 “이용자 안전의식 강화 및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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