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일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이 미국 등 9개 연합국을 상대로 ‘공식적’ 항복을 한 지 74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미국 국방부가 이를 기념해 2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장문의 글을 항복 문서 조인식 당시의 생생한, 그리고 귀중한 사진과 함께 게시했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VJ 데이’, 왜?
2차 대전을 마무리지은 1945년 일본의 무조건 항복은 영어권에선 흔히 ‘VJ’로 통한다. 일본에 대한 승리(Victory over Japan)의 이니셜을 따 그렇게 줄여 부른다.
그런데 각국이 기념하는 ‘VJ 데이’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미국은 일본이 정식으로 항복 문서에 서명한 1945년 9월2일을 ‘VJ 데이’로 여겨 매년 9월2일을 기념한다. 당시 연합국의 일원이었던 중화민국(현 대만)과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 역시 9월2일을 일본에 대한 승전 기념일로 간주한다.
반면 한국은 9월2일이 아닌 8월15일을 ‘광복절’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공식 항복에 앞서 1945년 8월15일 일본 국왕이 방송으로 연합국에 대한 무조건 항복 의사를 밝힌 점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한국뿐 아니고 호주, 네덜란드, 뉴질랜드, 그리고 영국도 매년 8월15일을 ‘VJ 데이’라고 부르며 기념한다.
2차 대전 당시 미국의 자치령으로서 일본군에 의해 점령당한 필리핀의 ‘VJ 데이’는 9월3일이다. 일본 중앙정부가 1945년 9월2일 미국 등 연합국에 항복한 데 이어 하루 뒤인 9월3일 필리핀을 다스렸던 일본군 총독부의 야마시타 도모유키 장군이 미군 조너던 웨인라이트 장군한테 항복한 점을 감안해 그렇게 정했다고 한다.
◆미주리호에 게양된 '뜻깊은' 성조기
1945년 9월2일의 일본의 항복 문서 서명식은 이른 아침에 도쿄 앞바다에 정박해 있던 미 해군 군함 미주리호의 갑판 위에서 약 30분간 진행됐다. 항복을 받은 주체는 미국을 필두로 영국, 소련(현 러시아), 중국, 프랑스, 네덜란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까지 총 9개국이었다. 아쉽게도 한국 대표는 그 자리에 없었다.
미 육군의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가 연합국 전체를 대표해, 미 해군의 체스터 니미츠 원수는 미국 정부를 대표해 각각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패전국인 일본에선 당시 외무장관이던 시게미쓰 마모루와 육군참모총장이던 우메즈 요시지로가 참석했다.

항복 문서 서명식이 열린 군함의 이름인 ‘미주리’는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해리 트루먼의 고향이 바로 미주리주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그날 미주리호에 내걸린 성조기는 1941년 12월7일 워싱턴 국회의사당에 게양됐던 바로 그 깃발이었다. 1941년 12월7일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한 점을 잊지 않겠다는 뜻이 담긴 조치였다.
행사장 주변에는 1853년 미 해군의 매튜 페리 제독이 쓰던 성조기가 전시됐다. 1853년은 페리 제독이 일본을 압박해 결국 미·일 수교가 맺어진 바로 그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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