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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침묵과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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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8-30 23:07:24 수정 : 2019-08-30 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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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르 몬드리안과 바실리 칸딘스키가 추상미술의 길을 열어 놓은 후, 1920년대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사조와 방법이야 어떻든 ‘추상’이라는 새로운 미술에 사로잡혔다. 이들은 그림에서 대상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 버리고, 정신만을 통한 기하학적인 화면 구성으로 그림 자체를 이루려 했다. 몬드리안과 칸딘스키의 그림이 추상으로 향했지만, 여전히 자연과 세계에서 받은 감동과 느낌을 바탕으로 한 점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경향의 대표적 화가로 카지미르 말레비치가 있었다.

 

말레비치의 ‘흰 배경 위의 흰 사각형’

 

말레비치는 ‘흰 배경 위의 흰 사각형’으로 대상을 완전히 지워버린 극단적인 추상을 실현하려 했다. 모든 것을 버리고 가장 추상적인 색으로 흰색을 칠하고, 가장 추상적인 형태로 사각형을 선택해서 ‘흰 사각형’을 만들어 새로운 추상 개념을 제시했다. 자신의 이런 작품 경향을 절대주의라고 했는데, 자연으로부터 어떤 대상도 가져오지 않았고 가져다가 변형하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단지 그림 자체의 공간 배분으로 화면을 가득 채워 그것이 진정한 예술적 창조라고 그는 말했다.

이것을 미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사실주의 그림뿐만 아니라 광고 포스터나 상품 포장지, 그 밖의 단순한 기하학적 디자인에서도 미적 즐거움을 경험한다. 그것은 미술의 새로운 시도들이 이어지면서 미적 즐거움을 주는 영역을 그만큼 넓혀 놓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말레비치는 흰 배경 위의 흰 사각형만으로도 그림이 될 수 있고 미적 즐거움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말레비치 그림을 보면서 고요한 침묵과 사색에 잠기고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틈만 나면 정의를 외치고 공정사회를 부르짖던 사람이 곤경에 빠졌다. 지금이라도 말보다 침묵이 필요하고 행동보다 생각이 필요한 때라는 것을 알아야 할 텐데. 그림 한 장이 백 마디 말보다 더 교훈적일 수 있다는 게 바로 이런 걸 게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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