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대 때에는 바(Bar) 문화를 무척 좋아했다. 바텐더의 마술 같은 칵테일을 즐길 수 있고, 멋진 아이스 커팅에 무엇보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주문을 하면 가벼운 위스키 샷으로 시작하고, 마지막에는 상큼한 가벼운 칵테일로 마무리를 했다.
바 카운터에 앉아 위스키를 주문하면 항상 같은 질문을 받았다. “스트레이트(독한 위스키 그대로 마시는 것)와 온더록스(얼음 탄 위스키 잔) 중 어떻게 마시겠습니까?” 스트레이트로 주문할 경우 ‘샷잔으로 제공할지, 올드패션드(동그란 넓은 잔)로 마실지’도 물었다. 개인적으로는 늘 온더록스을 주문했다. 얼음이 녹으며 또 다른 향을 내기도 하고, 또 얼음이 녹는 소리도 좋아했다. 갈증도 풀어줬다. 그런데 온더록스(On the Rocks)란 말은 어디서 유래한 말일까? 직역하면 ‘바위 위에 뭔가를 올린다’는 의미다. 왜 이 말이 위스키와 얼음의 조합으로 굳어진 것일까?

온더록스의 진짜 뜻은 좌초다. 영국에서 쓰였던 단어로 암초 위에 올라간 배를 뜻하는 것. 더 이상 배를 움직일 수 없는 것으로 좌절을 표현하는 단어로도 쓰였다. 그런데 이 단어가 미국에서는 다른 의미로 쓰였다. 금광과 다이아몬드 광산을 통해 일확천금을 노리던 19세기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에 록스는 단순히 돌이 아닌, 광부들끼리 서로 통하는 고귀한 광물을 지칭하는 단어가 된다. 바로 다이아몬드.
그들에게는 록스란 다이아몬드를 부르는 은어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얼음 탄 위스키와 다이아몬드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당시 미국 서부를 생각하면 나름 상상이 간다. 냉장고가 드물던 시절, 여름철의 얼음은 마음을 녹일 정도로 귀했다. 무엇보다 다이아몬드와 얼음의 공통점이 있었다는 것. 바로 둘 다 투명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얼음에 위스키를 주문하는 것을 두고 온더록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다이아몬드 위에 위스키’란 뜻이 된다.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위스키의 샷잔 역시 미국의 서부 개척사와 연결된다. 샷(Shot)이란 총기의 발사, 발포란 뜻도 있지만 또 하나가 있다. 바로 총알이다. 단어의 배경은 역시 19세기 서부개척시대다. 이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총기 소지가 자유로운 시절이었다. 즉 부와 빈곤의 상관없이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총기를 소지했던 시절이다. 즉 돈이 없는 사람도 총은 있던 시절이다. 여기서 샷잔은 출발을 한다. 바로 바(bar)에 가서 돈 없이 술 마실 수 있는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돈 대신 총알을 지급하는 것이었다. 모두가 총알을 필요로 한 만큼 총알은 화폐의 역할을 했다.
총알 하나로 살 수 있는 위스키의 양은 약 35㎖ 전후였다. 그래서 작은 양의 위스키를 우리는 샷 글라스(Shot glass)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한국에 와서 샷잔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흥미롭게도 미국 일부 지역에서는 ‘위스키 한 잔 더’란 표현으로 리로드(Reload)라고 사용하고 있다. 서부 역사와 연결하면 총알 한 개 더 장전해 달라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객원교수. SBS팟캐스트 ‘말술남녀’, KBS 1라디오 ‘김성완의 시사夜’의 ‘불금의 교양학’에 출연 중.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말술남녀’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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