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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넛 ‘디스랩’ 2심서도 유죄… 혐오와 예술의 경계는?

입력 : 2019-08-17 15:10:57 수정 : 2019-08-17 15: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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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이라는 장르에서만 특별히 그런(모욕) 표현을 정당행위로 볼 만한 합리적 이유가 없다.”

 

노래 가사로 상대를 깎아내리는 일명 ‘디스랩’을 통해 여성 래퍼 키디비(28·본명 김보미)를 성적으로 모욕한 혐의로 기소된 래퍼 블랙넛(30·본명 김대웅)이 2심에서도 유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0부(부장판사 김병수)는 지난 12일 블랫넛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과 같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 판결을 유지했다.

 

블랙넛은 문제가 된 ‘디스랩’ 가사에 대해 “힙합 장르에서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일련의 행위는 모두 피해자를 일방적인 성적 욕구 해소의 대상으로 삼아 비하하거나 ‘김치녀’라는 내용으로 조롱하거나 직설적 욕설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라며 인정하지 않았다. 상대에 대한 모욕을 힙합이란 이유로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내 힙합 ‘디스랩’을 통한 모욕죄가 인정된 것은 이 사건이 처음이라고 한다. TV예능, 유튜브 등에서 상대를 저격하는 ‘디스랩’이 힙합 문화 중 하나로 통용되는 만큼 힙합 내 비하표현이나 욕설 등에 경종을 울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래퍼 블랙넛이 지난해 3월 15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 힙합문화로 자리 잡은 ‘디스’…폭로에서 혐오로

 

16일 학계에 따르면 힙합 ‘디스랩’에서 ‘디스’는 ‘디스리스펙트’(Disrespect)의 줄임말로 노래 가사를 통해 상대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을 뜻한다. 특히 2013년 래퍼 이센스, 다이나믹듀오 등이 참여한 ‘컨트롤비트 대란’은 힙합 ‘디스전(戰)’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히는데 그 과정에서 래퍼 간 수많은 폭로가 꼬리를 물었다.

 

최근에는 ‘디스랩’이 인기 힙합 예능 프로그램들 등을 통해 상대 래퍼를 무너뜨리는 경쟁 도구화하면서 가사에는 듣기 민망한 자극적·노골적 표현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한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에선 여성 래퍼 둘이 “넌 그냥 X같은 존재. 밟아주기도 더럽지”, “가슴 흔들며 말하겠지 Shake it 그리고 물어봐야지 오빠 나 해도 돼?” 등의 가사를 내뱉으며 경쟁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다른 예능에서도 디스에 참여한 한 여성 참가자가 남성 참가자의 중요부위를 가리키며 “괜히 그 존심 세우지 말고 너 그거 안 쓸 거면 나 줘”라고 해 성추행 논란이 일기도 했다. 유튜브, 음원사이트 등에선 ‘디스랩’이 래퍼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노이즈 마케팅’의 일종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상대를 비하하고 욕설하는 내용이 ‘디스랩’, ‘힙합 문화’란 이름으로 아무렇지 않게 전파를 타고 유통되고 있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 대중에게 공공연하게 배포되는 ‘디스랩’ 모욕죄 가능성

 

 블랙넛 사건도 이른 흐름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블랫넛이 발표한 노래 가사 중 물의를 빚은 부분을 살펴보면 “난 솔직히 키디비 사진보고 X쳐봤지(곡명 ‘Indigo Child’)” “마치 키디비의 가슴처럼 우뚝 솟았네 진짜인지 가짜인지 눕혀보면 알지(미발매곡)” “줘도 안 처먹어 니 bitXX는(곡명 ‘Too Real’)” 등 다소 성적인 비하표현들이 사용됐다. 그는 공연 중 키디비를 언급하며 자위행위를 연상시키는 퍼포먼스 등을 한 혐의도 받고 있다.

 

법조계에선 이번 판결로 ‘디스랩’에 모욕죄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이 알려진 만큼 상대를 비하하는 목적의 무분별한 랩 가사는 자제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변호사는 “과거처럼 힙합문화가 음지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이제 TV 예능이나 음원 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바뀌었다”며 “모욕, 비하의 목적으로 대중에 공공연하게 배포해놓고 힙합문화라는 성역에 숨는 자체가 제한된다는 점을 (이번 블랙넛 판결이)보여줬다”고 꼬집었다. 그는 “랩이라도 대상이 심각하게 받아들이거나 지속적인 비하 행위는 모욕죄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힙합 예능 프로그램. CJ ENM 제공

◆ 힙합문화 ‘차별과 혐오’에서 벗어나야

 

힙합 ‘디스 대결’이 혐오 표현이나 욕설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것이 아닌 가사의 창의성과 랩 실력을 겨루는 장으로 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일례로 일부 대학의 힙합 동아리들은 교류차원에서 랩 실력을 겨루는 ‘디스전’을 펼치고 있다. 서울대와 한양대는 올해로 2회째 일명 ‘수도전’이란 랩 대결을 펼치고 있고 고려대와 연세대도 매년 정기전에서 힙합 디스랩 대결을 하고 있다. 수도권 36개 대학이 소속돼 있는 ‘대학힙합동아리연합’ 관계자는 “힙합 디스전은 도 넘은 비하가 난무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힙합에 대해 존중하며 음악으로써 하나가 되는 장이라고 생각한다”며 “랩을 얼마나 더 잘하는지 얼마나 창의적인지는 듣는 사람이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래퍼 비와이도 욕설과 자극적인 가사를 쓰지 않는 힙합을 추구하며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비와이는 지난 7월 한 예능에서 “힙합은 악하고 디스하는 음악이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내가 ‘쇼미더머니’에 나온 이후 그런 게 바뀌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힙합씬 내에서 나를 ‘체인저’(Changer)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 자체는 힙합문화의 특징이지만 그 목적이나 수위, 방식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차별적 발언이나 혐오적 발언은 힙합이란 이유로 용납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힙합 뮤지션들도 인간에 대한 존중이 바탕이 돼야 예술적 표현의 자유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안승진 기자 prood@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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