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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의 신직수, 盧의 강금실 등과 더불어… 66대 조국은 역대급 [박태훈의 스토리뉴스]

입력 : 2019-08-09 11:00:00 수정 : 2019-08-09 11: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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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장관 면면... / 66대 법무장관 후보 조국, 대통령과 케미 역대급 / 박정희 5사단장의 법무참모 신직수(법무· 중정부장) / 朴 시절 내무· 법무 김치열 / 노무현 시절 첫 女법무장관 강금실 등이 역대급 / '자유부인' 논쟁 황산덕 / 5공 6공 징검다리 법무 정해창 / 박근혜의 김기춘, 황교안 / 영원한 맞수 박희태와 박상천 / 관운 최고 민복기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조국 서울대 교수(전 청와대 민정수석)를 제66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역대 법무부 장관(조 후보자 포함) 중 변호사 자격이 없는 이는 조 후보자가 유일할 만큼 그에 대한 문 대통령의 신임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자유한국당 등은 ‘조 후보자가 문 정권 상징’이라며 공격을 퍼부었지만 별 소용 없었다. 따라서 조 후보자에 대한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경천동지할 하자가 발견되지 않는한 조국 교수의 법무부 장관 취임은 확실시 된다. 

 

모르긴 몰라도 대통령과 법무장관 관계에 있어 '문재인-조국'은 한 두 손가락안에 꼽힐 만큼 대단한 케미를 자랑할 것으로 보인다. 

 

◆ 역대 법무는 58명, 정권 달리한 법무는 이호와 정해창 2명

 

초대 이인 법무부장관(1947년 8월2일~1949년 6월 5일)부터 66대 조국 후보자까지 법무부 장관 타이틀을 단(예정)이는 모두 58명이다. 이들 중 정권을 달리해 장관 자리에 올랐던 인물은 이호와 정해창 단 두명 뿐이다. 

 

이호는 1공화국 시절이던 1955년 9월16일 8대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 뒤 박정희의 3공화국 시절이던 1968년 5월21일 20대 법무부 장관으로 컴백했다. 이후 이호는 대한적십자사 총재, 국보위 의장 등을 거쳤다.

 

정해창(사진 가운데) 36대, 37대 법무부 장관(1987년 5월 26일~1988년 2월24일)은 5공화국 마지막 법무부 장관이자 6공화국 초대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경북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 수석입학, 수석졸업한 정해창 장관과 관련해 법대학장이 경북고 교장에게 '우수한 인재를 보내줘 고맙다'고 감사편지를 보냈다는 일화가 있을 만큼 수재로 유명했다. 더불어 동생인 정해왕(왼쪽) 전 금융경제연구원장, 정해방(오른쪽) 전 기획예산처 차관과 함께 '수재 3형제'로도 이름을 날렸다. 

 

◆ 대통령 신임에서 조국과 쌍벽 이룰 신직수...박정희 5사단장의 법무참모에서 장관, 중앙정보부장까지 

 

임명권자인 대통령 신임면에서 조국 후보자와 겨룰 상대는 22대 신직수 장관(1971년 6월4일~1973년 12월2일)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5사단장으로 있을 때 법무참모로 보좌했던 신 장관은 중앙정보부 차장,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을 거쳐 중앙정보부장까지 역임했다. 군법무관 출신으로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지낸 유일무이한 인물이다. 

 

27대 김치열 장관(1978년 12월22일~1979년 12월 13일)도 박정희 신임이 두터웠다. 경찰과 공무원을 관장하는 내무무 장관을 거쳐 법무부 장관으로 간 그는 10·26으로 박정희 정권이 기우는 것을 눈으로 목격했다. 

 

◆ 아직까지 유일한 여성 법무장관 강금실, DJ시절 두차례 법무 김정길...대통령과 케미 역대급

 

타고난 승부사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첫 내각 구성 때 깜짝 카드를 내밀었다. 55대 법무장관(2003년 2월 27일 ~ 2004년 7월 28일)으로 강금실 변호사를 택한 것. 

 

사상 첫 여성장관, 검사출신이 아닌 판사 출신, 40대 장관(당시 46살)이라는 점도 파격적이었지만 사법연수원 기수가 13기(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동기)로 노무현 정권 첫 검찰총장인 송광수 총장(연수원 3기)보다 무려 10기수나 아래여서 그 충격파가 대단했다. 

 

같은 정권에서 두번씩(연임 케이스 제외)이나 법무부 장관을 맡았던 이는 이승만 정권 때의 권승렬(2대, 10대)과 김대중 정권 시절 김정길 장관(49대, 53대) 두명이다. 권승렬의 경우 이승만 대통령 하야 직후 어수선한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 맡았기에 한 대통령 밑에서 법무장관을 두번 역임한 이는 사실상 김정길 장관 뿐이다. 

 

김정길 장관은 DJ(김대중) 차남 구속에 책임을 지고 52대 송정호 장관이 물러나자 검찰 동요를 막기 위해 투입돼 4개월여 일한 뒤 54대 심상명 장관에게 자리를 넘겼다. 이는 그에 대한 DJ의 신뢰도가 대단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 관운은 민복기· 서울대 법학박사 1호 황산덕, 자유부인 논쟁으로 유명 

 

16~18대 법무부 장관을 지낸 민복기는 역대 장관 중 최고의 관운을 자랑한다. 판사출신인 그는 자유당시절 법무부 차관, 검찰총장을 거쳐 박정희 정권 때 대법원 판사, 법무부장관에 이어 대법원장에 올라 연임까지 했다. 1938년 판사시보를 시작으로 1978년 대법원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40년을 법(法)과 관련된 모든 직책을 맡았다할만큼 관운만큼은 대단했다.

 

24~25대 법무장관 황산덕은 서울대법대 박사학위 1호로 형법과 법철학 권위자였다. 황 장관은 다른 일로 사람들 입에 먼저 이름이 오르내렸다. 1954년 정비석이 한국전쟁이 남긴 사회상을 '자유부인'이라는 소설로 다루자 당시 서울대 법대 교수였던 황산덕은 교수들의 명예를 훼손(소설속에 대학교수 부인이 젊은이와 춤바람을 문제삼았다)했다며 정비석과 논쟁을 펼쳤다. 황 교수가 "갖은 재롱을 부려가며 대학교수를 모욕하고 있다. 중공군 50만명에 해당하는 문화의 적, 문학 파괴자다"고 정비석을 공격하자 지식인들이 정비석을 옹호하고 다시 여성단체가 정비석을 비판하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찬반 양론이 뜨거웠다. 

 

황산덕은 법무장관을 지낸 뒤 문교부 장관으로 자리를 이동, 법과 교육계 원로대접을 받았다.

 

◆ 박근혜와 얽히고 설킨 김기춘, 황교안

 

40대 김기춘(1991년 5월 27일~1992년 10월 8일· 왼쪽)과 63대 황교안(2013년 3월 11일 ~ 2015년 6월 13일· 오른쪽)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얽히고 설킨 관계다. 

 

김기춘 장관은 노태우 정권시절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을 지내면서 김영삼 정권 탄생에 나름 기여한 검찰내 PK인맥의 대부였다. 이후 박근혜 정권 탄생에 깊숙히 관여한 그는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총리보다 더 센 위력을 발휘했다. 그 대가로 국정농단 각종 혐의에 연루돼 비참한 말년을 보내고 있다. 

 

황교안 현 자유한국당 대표는 법무부 장관을 거쳐 제44대 국무총리로 영전했다. 탄핵 뒤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2인자도 아닌 1.5인자 생활을 5개월여했다. 

 

◆ 대학· 사시· 국회의원 입문 동기, 박희태와 박상천...대변인 맞수로 이름 떨쳐  

 

YS정권 초대 법무장관 박희태(42대 법무· 오른쪽)와 DJ정권 첫 법무장관 박상천(47대· 왼쪽)은 맞수 중 맞수로 이름이 높다. 1938년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서울대법대 57학번 동기, 사법고시 같은해 합격(1961년 13회), 검사 동기를 거쳐 정치권에도 나란히 데뷔(13대 국회)했다.  

 

두 사람은 여야 대변인으로 갈려 서로를 비난했지만 나름의 논리력과 촌철살인이 담긴 어휘 등으로 '격조 높은 대변인'의 전형으로 남아 있다. 

 

지금까지 널리 쓰이고 있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총체적 난국’, '정치9단' 등은 박희태 장관이 대변인 시절 남긴 명언이다. 박상천 장관도 '쿠데타적 발상',  '뻐꾸기 같은 신당' 등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는 논평을 내 놓았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사진=연합뉴스· 세계일보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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