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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 안보 지킬 ‘최후의 보루’… 시설·인력 등 국가 지원 절실 [격화하는 세계 '종자 전쟁']

입력 : 2019-08-05 19:27:02 수정 : 2019-08-05 22: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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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반도체’ 종자산업 뒤처진 한국 / 토마토 종자, 금값 2배… 부가가치 높아 / 품종보호 등록후 20~25년 지재권 보호 / 기업 M&A 활발… 1400억弗대 합병도 / IMF때 흥농·중앙 등 외국기업에 팔려 / 한국 기술력 열세… 수출액 세계 30위 / 2022년까지 종자 국산화율 47% 목표

#1. 지난해 12월 제주도 일부 감귤 농가에는 비상이 걸렸다. 일본이 1년 전쯤 우리나라에 품종보호 출원한 만감류 ‘미하야’ ‘아스미’에 대한 판매 중단과 로열티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출원 전 심은 감귤나무 수확물의 경우 임시보호권 대상이 아니라고 유권해석을 하면서 한·일 간 감귤 ‘종자 분쟁’은 일단락된 상황이다. 한라봉과 천혜향 등 국내 재배 감귤 대부분은 일본산이다. 감귤 국산화율은 지난해 기준 2.3%에 불과하다.

 

#2.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딸기는 오늘날 감귤과 같은 처지였다. 국내 재배 딸기의 90%가량이 ‘장희’(아키히메)와 ‘육보’(레드펄) 같은 일본 품종이었다. 로열티로만 한 해 24억∼64억원이 나갔다. 정부는 2002년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UPOV) 가입 이후 딸기연구사업단까지 꾸려 딸기 국산화에 매진했다. 그 결과 ‘매향’ ‘설향’ ‘싼타’ 등 수출 주력 품종들이 속속 개발됐다. 5일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2006∼2018년 딸기 로열티 절감액은 195억원이 넘는다

 

연합뉴스

 

◆세계는 ‘금보다 비싼 종자’ 확보전쟁 중

 

세계 각국의 ‘종자 전쟁’이 격화하고 있다. 세계 종자시장 규모는 372억∼450억달러 정도.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활발하게 진행 중인 종자기업 인수·합병(M&A) 가격은 천문학적이다. 독일의 화학·제약회사인 바이엘은 지난해 5월 미국의 종자기업 몬샌토를 630억달러에 인수했다. 2017년 9월 마무리된 다우케미컬과 듀폰의 합병 규모는 1400억달러였다. 앞서 중국화공그룹은 2016년 2월 당시 세계 3위 종자회사인 스위스 신젠타를 인수하는 데 430억달러를 썼다.

국내 1위 종자업체인 농우바이오가 골든시드프로젝트(GSP) 지원을 받아 개발한 옥수수 품종 ‘미다스’의 2017년 인도 품평회 모습. 농우바이오 이병각 대표는 미국과 중국 등 6개 해외법인을 통해 1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이들 다국적기업이 ‘몸집 키우기’에 나선 까닭은 농업판 ‘반도체 산업’이라고 불리는 종자 산업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다. 종자는 농업 생산성과 부가가치를 높이는 원천이다. 네덜란드가 1970년대 피망을 개량해 만든 파프리카는 연간 1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황금보다 비싼 종자도 있다. 일부 파프리카, 토마토 종자는 g당 10만원 안팎인데 이는 금(g당 약 5만원)값의 2배가량이다.

 

우수한 품종을 많이 보유한 기업이나 국가는 상당한 로열티 수입을 기대할 수 있다. 품종보호 등록 후 20∼25년간 지식재산권 보호를 받을 수 있어서다. 세계 곳곳의 덩치 큰 종자회사들을 인수한 바이엘·몬샌토의 2016년 매출액은 전체 시장의 3분의 1가량인 120억달러에 이른다.

 

종자는 국가 간 분쟁 시 식량 주권과 안보를 지킬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일본이 국내 보급 종자를 모두 끊었던 광복 직후 상황이나 독일·일본의 장미 로열티 요구로 화훼농가가 패닉에 빠졌던 1990년대 후반 사태가 대표적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고품질의 다양한 종자를 많이 확보하고 있을수록 농산물뿐만 아니라 식품이나 제약, 소재 등과의 융복합을 통해 고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임용표 충남대 교수는 “바이엘과 화공그룹, 다우 등 최근 종자기업 인수자들이 화학·제약 기반 기업이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이들 종자 선진국보다 시장 규모나 자금력, 기술력 등에 있어 한참 열세다. 2017년 기준 국내 종자시장 규모는 5920억원. 같은 해 394억달러(약 46조6700억원) 규모였던 세계 시장의 1.3% 수준이다. 우리 업체들의 종자 매출액 가운데 88%인 5210억원은 국내에서 발생했다.

 

수출액은 더 미미하다. 2017년 우리의 종자 수출액 5854만달러는 주요 종자 강국인 네덜란드(20억4000만달러), 프랑스(18억100만달러), 미국(17억1200만달러) 등에 이어 세계 30위 수준이다. 세계 30대 종자기업 중 한국 기업은 하나도 없고 1315개 종자업체 중 매출액이 40억원 이상인 기업은 농우바이오와 LG팜한농, 아시아종묘, 더기반 등 29개에 불과하다. 전체의 88.6%(1165개)는 한 해 매출액이 5억원 미만이다.

 

◆영세한 한국 종자 산업… 정부 지원 절실

 

그래도 골든시드프로젝트(GSP) 덕에 우리의 종자산업 경쟁력이 조금 강화됐다. GSP는 우리의 품종 연구개발(R&D) 역량을 강화하고 산업 전반의 인프라를 정비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2012년부터 2021년까지 4911억원을 투입하는 내용의 프로젝트다. 2022년까지 종자 수출 2억달러를 달성하고 국산품종 보급률을 47%까지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현재 GSP는 단계별 목표치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 2018년 종자 수출액(5230만달러)의 74%가 GSP 관련 품종이었다. 일본 의존도가 높은 양파 종자를 개발해 지난해 140만달러어치를 수출한 영농법인 ‘씨앗과 사람들’과 그간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미니 파프리카 종자를 개발해 120만달러 수출 계약까지 맺은 경남농업기술원 등 GSP는 지난해까지 수출주력·수입대체 535품종을 출원했다.

종자 국산화율이 높아지니 해외에 내야 할 로열티도 줄었다. 딸기와 장미, 국화, 난, 참다래, 감귤, 버섯 등 12개 작목의 2011년 국산화율은 16.2%. 하지만 지난해엔 26.2%까지 끌어올렸다. 딸기 품종의 자급률은 2011년 71.7%에서 2018년 94.5%로, 버섯은 40.2%에서 57.0%로, 장미는 22.0%에서 30.2%로 올라갔다. 해외에 지불한 로열티 역시 같은 기간 172억6000만원에서 109억6000만원으로 줄었고 해외에서 받은 로열티는 2011년 2480만원에서 2018년 2억550만원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종자·육묘 업계는 한국이 세계적 수준의 종자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품종 개발과 종자가공처리장 등 기반시설 구축, 박사급 인력 양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상근 한국종자협회 부회장은 “1997년 외환위기 때 흥농·중앙·서울종묘 등이 다국적기업으로 넘어가면서 종자 지재권은 물론 인력과 자금력, 기술력이 계속 열세”라며 “석·박사급 인력 영입과 연구개발 투자를 위한 국가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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