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른 살 때까지 한 번도 ‘행복하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걸 서른이 넘어서야 깨달았다. 부모가 생각하는 착한 딸, 선생님이 생각하는 훌륭한 학생, 사회가 생각하는 괜찮은 구성원이 되느라 정작 내가 생각하는 진짜 나 자신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사회화와 개성화의 차이를 알게 되고, 나는 내가 ‘개성화하지 못한 인간’임을 알게 됐다. ‘다른 사람이 원하는 인간’이 되느라 ‘내가 원하는 존재’가 되지 못한 사람, 그것이 나였다는 깨달음이 너무도 아팠지만, 그 아픔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이 더 많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아무리 진지하게 무언가를 추구해도, 내 삶의 중심이 ‘나 자신’ 안에 있지 않으면 누군가의 엑스트라, 누군가의 사회화의 결과물, 부모나 사회의 열망이 투사된 환영에 불과함을 알게 됐다.
서른이 넘어서도 이런 식의 질문을 하는 사람이 많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요?” “이런 상황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그럴 때마다 나는 조언을 해주긴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은 그 순간에 맞춤 서비스 되는 구체적인 조언이 아니라 ‘이런 중요한 사안은 남에게 물어볼 것이 아니라 우선 자기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지키는 무기를 내 안에서 찾아내는 것, 그것이 문학과 심리학이 내게 가르쳐 준 최고의 무기였다. 가족이 나를 지켜주지 못할 때도,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할 때도,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내 안의 모든 지혜와 용기를 끌어모아야 했고, 그렇게 온몸으로 부딪칠 때마다 조금씩 성장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나를 지켜내지 못하면 아무도 나를 지킬 수 없는 상황이 정말 많은데도, 사람들은 인생이라는 검투장에서 나를 지킬 무기를 갖추지 못한 채 ‘금수저’나 ‘무적의 멘토’를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는 순간,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내 안의 최고의 멘토를 찾기 위한 불굴의 의지를 기르기 위해, 나는 심리학을 공부하고, 문학작품을 읽고, 글을 쓰며 나 자신의 상처와 잠재력을 점검하고 보살핀다. 매일 나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깜짝 놀랄 일이 많다. ‘나에게 아직 이런 상처가 숨어 있었구나’라는 깨달음에 울기도 하고, ‘나에게 이 상처를 이겨낼 용기와 지혜가 이미 있었구나. 나는 오래전에 이미 그 상처를 이겨낸 것이로구나’ 하고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심리학을 공부하며 ‘트라우마가 나를 구속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더 이상 트라우마가 나를 휘두르지 못하도록, 매일 트라우마와 대면하는 훈련을 했다. 이제는 트라우마가 나를 굴복시키지 못했음을, 내가 그 트라우마보다 더 강인한 사람임을 알게 됐다. 그 깨달음은 어떤 재산보다도 값진 내적 자산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나인 채로 그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인문학 강연을 하다가 고교생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어보았더니 겁을 잔뜩 집어먹은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실패가 두렵다고. 좌절이 두렵다고. 아직 제대로 실패조차 해본 적 없는 아이들이 실패가 두렵고, 좌절이 두려워 웅크려 있는 모습이 마음 아팠다. 그들에게 말해 주었다. 실패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실패조차 못하는 것, 도전조차 안 하는 것이 훨씬 두려운 일이라고. 실패하더라도, 거절당하더라도, 나는 내 삶의 무대에서 매번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 온몸으로 부딪치며 새로운 도전을 해보았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을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아가는 요즘이다. 매일 내 인생의 진짜 주인공이 돼가는 기분이 짜릿하다. ‘안 될 것 같아, 너는 안 될 거야, 이번에도 실패할 거야’라고 속삭이는 내 안의 용과 싸워 이길 때 우리는 진짜 나 자신, 더 멋진 나 자신, 더 아름다운 내 안의 자기와 만날 수 있다. 그렇게 매일 우리는 우리 자신이 직접 쓰는 ‘나만의 신화’의 진정한 주인공이 돼간다.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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