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중 자살 사망자를 50% 줄이겠다고 발표했음에도 자살률이 떨어지지 않자 정부가 강수를 뒀다. 지난 16일부터 시행된 개정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이하 자살예방법)’에 따라 온라인에 자살유발정보를 퍼트리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를 위반하면 최대 2년 이하 징역형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자살예방법이 온라인 동반자살 모의 등을 막아 자살률을 떨어트릴 수 있으리란 기대가 있지만 실효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자살유발정보가 가장 많이 유통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대부분 해외 업체 것이라 문제가 되는 게시글 삭제 등 실질적인 제재가 어렵다는 것이다. 비판론자들은 아울러 ‘정부가 오죽했으면’ 하면서도 형사처벌까지 가하는 게 자살예방의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겠느냐는 반응을 보인다.

◆5년 새 온라인 자살유발정보 13배 증가
자살예방법상 자살유발정보란 △자살동반자 모집 △구체적인 자살 방법 △자살 실행 및 유도를 담은 문서·사진·동영상 △자살을 위한 물건의 판매·활용 정보 △그 밖의 명백한 자살 유발 목적 정보 등을 말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자살을 희화·미화하거나 단순히 ‘죽고 싶다’처럼 자살에 대해 막연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처벌 대상이 아니다.
온라인에 유통되는 자살유발정보는 최근 5년 새 13배나 증가했다. 자유한국당 김도읍 의원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살유해정보 심의 현황’을 보면 자살유해정보 심의 요청 건수는 △2014년 383건 △2015년 511건 △2016년 1786건 △2017년 1805건 △2018년 5001건으로 매해 크게 뛰었다.
자살유발정보가 가장 활발히 공유되는 곳은 단연 SNS다. 개정법 시행 전 보건복지부·경찰청·중앙자살예방센터가 진행한 ‘국민 참여 자살유발정보 클리닝 활동’에서 신고된 1만6966건의 자살유발정보를 분석한 결과 75.8%(1만2862건)가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에서 적발됐다. 특히 최근 사회적 문제로 대두한 동반자살자 모집(2155건)의 88.5%(1907건)는 트위터에서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자살 검색어 입력하자 관련 정보 우르르… 신고에도 버젓이 공유돼
그렇다면 개정 자살예방법이 시행된 지난 16일부터는 어떨까. 자살유발정보의 자취가 많이 사라졌을까. 안타깝게도 여전하다. 지난 23일 트위터에 자살 관련 검색어를 입력하자 유해정보가 쏟아졌다. 성인인증이나 검색어 제한도 없었다. 게시글 중엔 여성 청소년이 ‘더는 살고 싶지 않다’며 간절한 어투로 함께 자살할 사람을 모집하거나, 20대 청년이 온라인상 판매가 금지된 자살용 약물을 구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자살유발정보 신고는 경찰(112)에서 받고 있다. 트위터에서 발견한 게시글 10여건을 캡처해 직접 112 문자 신고를 해봤다. 신고한 지 몇 분도 안 돼 담당자가 배정됐다며 기자의 현재 위치를 묻는 경찰 전화가 걸려왔다. 다만 담당자는 실제 현장에서 누군가 자살하려 한다고 오해한 듯했다. ‘자살예방법에 따라 온라인에서 본 자살유발정보를 신고한 것’이라고 설명하자 다시 담당자 배정 후 연락을 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신고 후 이틀이 지난 24일 오후까지 담당자로부터 연락을 받지 못했고, 기자가 신고한 자살유발정보들도 버젓이 공유되고 있었다.

◆트위터 등 해외 기업 국내법 적용 안 받아 실효성 논란
26일 자살예방법에 따르면 긴급구조기관은 자살을 암시하는 글이 올라왔을 때 게시자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 사업자 등에 요청할 수 있다. 업체에서 이를 거부하면 1년 이하 징역형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카카오, 네이버 등과 달리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은 해외 업체라 예외다.
이 때문에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 등은 법률 개정 전부터 해외 SNS 업체의 한국 법인 담당자를 만나 자살유발정보의 신속한 처리를 위한 협의를 해왔다. 그럼에도 삭제 요청이나 정보 제공에 짧게는 수일, 길게는 수개월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정된 법률이 시행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유관기관들은 게시글 삭제 요청을 어느 기관에서 해야 하는지조차 가닥을 잡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중앙자살예방센터는 “법률 개정 후 신고자의 삭제 요청은 모두 112에서 처리하고 있다”고 했지만, 경찰청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아닌 경찰이 전담해서 삭제 요청을 해야 하는지, 신고가 들어온 후 언제 삭제를 요청해야 하는지 등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제도 시행 초기라 업무 분장 등을 놓고 현장에서 혼란이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자살유발정보 신고 사항 처리 과정과 관련해 경찰청 생활안전과 관계자는 “신고가 들어오면 경찰은 먼저 법률에 따라 자살유발정보인지 판단한다”며 “이후 자살을 시도하려는 긴급구조 대상자가 있다면 구조하고, 약물 등 자살도구 판매자에 관한 내용이면 수사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앞서 기자가 신고했던 내용의 진행 상황에 대해선 “사건을 배정받은 담당자가 바로 트위터, 방송통신위원회 측에 삭제 요청을 보냈고 트위터 측에 게시자의 인적사항 회신을 요구했으나 트위터 측에서 ‘급박성이 없다’며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고 전했다. 카카오 아이디가 있는 게시글에 대해선 자료 제공 요청을 위한 영장을 받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기자가 신고한 게시글 중 일부만 지난 25일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을 뿐 대부분 게시글은 신고 접수와 처리가 제대로 됐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자살이 범죄인가? 처벌 아닌 근본적 대책 필요”
자살을 부르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형사처벌을 통해 자살을 예방하는 게 효과적인지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살인 등 범죄를 모의한다면 범죄지만, 과연 자살을 범죄로 볼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자살예방법은) 자살에 관해 의논하고 고민하는 것도 의사하고만 하라는 법이다. 이 때문에 자살에 대한 생각을 숨기고 논의가 음성화돼 더 많은 사람을 구조할 기회를 놓치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살의 근본적 원인을 줄이려면 청소년, 청년, 노인 등이 당면한 사회문제에 따른 복잡한 대안을 세워야 한다”며 “그런데 정부는 자살을 정신질환으로만 치부해 항우울제 투약, 정신과 상담에만 집중하고 거기다 처벌까지 하겠다고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자살률이 줄어들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러한 논란에 대해 “자살예방법은 처벌보다는 예방과 구조에 방점을 둔 법이다. 법률 개정으로 자살방법 공유 등을 차단하고 긴급구조가 필요할 때 인터넷 사업자 등으로부터 개인정보를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존엔 1만명 자살 시도자 중 100명을 구했다면 법 개정을 통해 110명을 구하게만 돼도 의미가 있다.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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