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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우리안의 정일과 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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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7-21 23:31:42 수정 : 2019-07-21 23:3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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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 日 숭배자 뜻하는 ‘정일’ / 최근 그럴듯한 논리로 아베 옹호 / 근거 없는 일본인 혐오도 문제 / 다수 일본인은 친구 잊지 말아야

지난해 12월 중국 당국이 난징(南京)학살 81주년을 맞아 정일(精日)행위에 대해 칼을 뽑아들었다. 정일이란 ‘정신적 일본인(精神的日本人)’이라는 뜻. 중국의 온·오프라인에서 일본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발언·행위를 하는 중국인을 의미한다. 지난해 일본군의 무자비한 살생이 자행된 난징의 항일유적지에서 ‘황군(皇軍)’ 복장을 한 청년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가 대륙 전체에 파문이 확산하는 등 정일 문제가 크게 부각됐다. 그러자 난징시가 욱일기(旭日旗)와 같은 군국주의 상징물 소지와 일본의 침략·군국주의를 찬양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조례를 제정해 시행에 들어간 것이다.

 

일본에서는 정일에 대해 당연히 우호적이다. “온화, 예절, 청결, 질서, 근면, 협조, 겸허한 일본인의 우수한 특성이나 라이프 스타일을 존중해서 배우고 자신의 생활에 적용하려는 중국인”(‘정일 - 가속도로 일본화하는 중국인의 군상’)이라고 ‘아름답게’ 정의하며 우월적 입장에서 지지를 표시한다.

김청중 도쿄특파원

사실 최근 일본에서 한·일 관계 기사를 다룰 때 우려되는 게 있다. 1910년 때처럼 나라를 팔아먹을 거 같은 기세의 인물·세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새삼 재확인한 탓이다. 중국의 정일은 제국주의의 상징을 소비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식 정일은 그럴듯한 논리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반한(反韓) 입장을 교묘히 옹호하고 재생산하면서 우리 정부를 압박하는 진화한 형태다.

 

현재 인터넷에서 일부 네티즌은 대표적으로 두 가지 종류의 주장을 하고 있다. 대안을 제시하라거나 양국 정상회담에 즉각 나서라고 문재인정부를 재촉하는 행태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과 관련해 한·일의 예상 가능한 입장을 0에서부터 10으로 나누고 양단(0과 10)에 양국의 가장 원칙적 자세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0에는 사법판단이자 민사사건이기 때문에 개입할 수 없다는 한국의 원칙적 입장이, 10에는 국제법 위반이니 일본 측은 한 푼도 낼 수 없다는 일본의 원칙적 입장이 있다.

 

그런데 이미 양보안을 제안한 것은 우리 정부다. 정치적 반발이 있을 수 있음에도 한·일 기업의 자발적 출연금으로 피해자 배상 재원을 마련하자는 소위 1+1 방안을 제시했다. 0에서 3, 4 정도로 이동했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10의 입장을 집요하게 고수하며 꼼짝달싹을 하지 않고 있다. 또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사태에서도 봤듯이 한·일 정상회담을 거부하고 있는 쪽은 일본이다. 주체적 시각이 결여된 채 일본을 추수(追隨)하는 주장은 결국 아베 정권의 입맛대로 해주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박근혜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박근혜정부 출범 초기 역대 정권 중 유일하게 선(先) 위안부 문제 해결·후(後) 한·일 정상회담 개최라는 배수진을 치고 기싸움을 벌였다. 이때도 꿈쩍 않는 아베 정권을 비판하기보다는 애국하는 양 한·일 관계를 우려한다며 우리 정부의 등에 칼을 꽂는 듯한 여론이 쏟아지며 정부를 흔들었다. 그 후의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안다.

 

이번 사태에서 정일만큼 부끄러운 또 다른 자화상이 혐일(嫌日)이다. 혐한처럼 혐일은 일본, 일본인에 대한 혐오감정으로 정의할 수 있다. 아베 정권의 무도한 반한 정책을 냉정하게 비판하기보다는 일본, 일본인에 대한 차별적인 언사를 배설물처럼 쏟아낸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절대다수의 일본인은 우리의 좋은 친구일 수 있다는 점이다. 도도한 양국의 교류사를 보면 근현대의 불행한 역사는 일시적인 상황일 수 있다. 한·일은 지구가 끝나는 날까지 이웃일 수밖에 없다. 특히 대한민국은 다문화공동체를 향해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근거 없는 차별적 언사는 우리 공동체 일원에게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다. 말 한마디로 인해 자라나는 다문화가정의 어린이들이 입을 정식적 트라우마를 생각이나 해봤나. 우리는 정일의 뿌리인 일본 우익의 방식으로 이 나라를 일으켜 세워서는 안 된다.

 

인간에 대한 깊은 배려와 존중이 없이 증오의 토대 위에 서는 한 어떤 주의·주장도 성공할 수 없다.

 

김청중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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