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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영화이야기] 영화 속 나쁜 여자, 이상한 여자, 죽이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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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7-13 14:00:00 수정 : 2019-07-12 17: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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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제목의 전시가 시작됐다. 한국영상자료원은 7월12일부터 10월13일까지 한국영화박물관에서 ‘나쁜 여자, 이상한 여자, 죽이는 여자’라는 제목으로 기획 전시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섹슈얼리티, 위반의 퀴어, 초-능력, 비인간 여자, 법 밖에 선 여성, 엄마의 역습이라는 여섯 가지 주제를 선정해 각 주제 별로 한국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는데, 동시에 한국영화의 변화도 목격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한국영화 속 여성 캐릭터가 누구일까?’ 혹은 ‘가장 싫어했던 여성 캐릭터는 누구일까?’ 또 ‘가장 자주 만났던 여성 캐릭터의 직업은 무엇일까?’  

 

100년 전인 1919년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한국영화에서는 분명 여러 여성 캐릭터가 등장했었을 것이다. 그중에는 너무 전형적이거나 식상한 캐릭터도 있었을 테고, 편견이 투영된 왜곡된 캐릭터도 있었을 것이다.   

 

일단 최초의 한국영화로 평가되는 ‘의리적 구토’(감독 김도산, 1919)는 현재 영화가 남아있진 않지만, 알려진 줄거리에 따르면 ‘주인공이 송산이 선친의 유산까지 노리는 계모 일파에게 고통을 받아가, 정의의 칼을 뽑아 든다고 한다.’ 꽤 오랫동안 영화 안팎에서 주인공을 괴롭히는 단골 캐릭터로 등장했던 계모 캐릭터가 100년 전 한국영화에도 등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몇몇 계모 캐릭터들이 더 떠오른다. 반대로 전형적인 엄마 캐릭터도 떠오르고. 영화 속 엄마 캐릭터를 통해 여성, 어머니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짐작해볼 수 있다. 물론 변화의 양상도 발견할 수 있다. 

 

여성 캐릭터뿐이겠는가. 영화를 통해서는 새롭고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뻔하고 식상한 전형적인 캐릭터가 반복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표현되는 방식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영웅화되는 캐릭터도 있고, 함부로 대충 다뤄지는 캐릭터도 있다. 

 

여성 캐릭터의 경우 상대적으로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지속되어 왔다. 여성 주인공 자체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여성이 주인공인 한국영화는 흥행에 실패한다는 속설도 존재한다.

 

영화화되는 스토리에서 여성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적다는 것, 그나마도 여성 캐릭터가 다양하지 않다는 것은 사회 내 여성의 위상과 무관하지 않다. 현실에서도 여성의 역할이 크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여성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다보니 영화적 표현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최근 디즈니와 마블 영화 속 여성 캐릭터의 변화가 주목 받는 것이다. 지난 글에서도 ‘알라딘’(감독 가이 리치, 2019)의 쟈스민 공주에 대한 얘기를 했더랬다. 애니메이션 버전에서 수동적 철부지 쟈스민 공주는 영화 밖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야심 있는 능동적 캐릭터로 변신했고, 마냥 만능 영웅이었던 알라딘은 쟈스민 공주의 파트너이자 협력자로 인간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단순히 유능하고 멋진 여성 캐릭터가 많아져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좀 더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길 기대하는 것이다. 편견이나 선입견에만 의존해 단순화되고 일반화된 뻔한 캐릭터는 등장시키지 말자는 것이다. 

 

사실 영화 캐릭터와 관련해 성차별, 인종차별 등의 이슈가 발생하면, 가장 어설프게 해결하는 방식이 일단은 무조건 착하고, 멋지고, 선한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무작정 선한 캐릭터 역시 매력적이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비슷한 모습으로 반복되고 있는 캐릭터는 없는지 두루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만약 식상함이 느껴지거나, 불편함이 느껴진다면, 분명 세상의 변화와 현실을 담아내지 못한 캐릭터일 것이다. 

 

다양한 소재와 스토리는 다양한 캐릭터 없이는 풍성해질 수 없다. 다양한 캐릭터는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 없이는 창조될 수 없다. 이런 다양한 시도 없이 새로움과 변화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번 ‘나쁜 여자, 이상한 여자, 죽이는 여자’ 전시는 영화와 미디어아트의 접목도 시도한다고 주제별로 선정된 영화를 3면 스크린과 미디어아트 전시 기법을 통해 전달한다는데, 상상이 쉽게 되지 않는다면, 더더욱 관람을 추천하고 싶다. 

 

이미 본 영화는 조금 색다른 방식으로 다시 보는 것이 최고다. 더불어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모두 새로운 시선에서 바라본다면 더더욱 새로운 경험이 될 듯하다. 무엇보다 얼마나 나쁘고, 이상하고, 죽이는 여성들이 등장했었는지 확인하는 재미도 클 듯하다. 

 

서일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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