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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절경 입지 중요치 않아… 오래된 마을 귀퉁이 집 지어도 실패 없어” [마이라이프]

, 마이 라이프

입력 : 2019-07-13 06:00:00 수정 : 2019-07-12 19: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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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계승 하려 시멘트로 한옥 지은 국어교사 송승훈씨 / 아파트보다 자연과 인접한 집짓기 희망 / 건축관련 책 100여권 구입해 거듭 통독 / 건축가 이일훈씨 ‘모형속을 걷다’ 책 감명 / 李 건축가에 무작정 전화 “설계 맡아달라” / 정중한 거절에 간곡한 요청… 마침내 수락 / 2년간 메일 주고 받은 끝에 집짓기 시작 / 집에서 가장 눈길 사로잡는 공간은 서재 / 일반인에 집 짓는법 소개… 모임장소로 제공 / EBS ‘최고의 교사’로 선정… 수능 출제도

그는 ‘시멘트로 지은 한옥’에 산다. 이 집을 짓기 위해 그는 건축가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무려 A4용지로 208쪽, 82통에 이른다. 이메일로 지은 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5일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에 위치한 집에서 주인 송승훈씨를 만났다. 그는 집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한 고등학교 국어교사다. 그의 집 대문에는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낡은 책이 있는 거친 돌집)’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다. 콘크리트로 집을 짓고 내부 곳곳에 책이 쌓여 있어 집 이름으로는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딱 맞았다. 미리 집 이름을 정해 놓고 집을 지은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는 어느 날 문득 넓은 평수의 아파트보다는 자연과 인접한 사람 살 만한 곳에 집을 짓고 살고 싶었다. 집을 짓겠다고 결심한 그가 제일 먼저 실행에 옮긴 것은 건축 관련 책을 구입해 읽는 것이었다. 한두 권이 아니라 싹쓸이에 가까울 정도로 샀다. 교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았던 그는 건축 관련 책을 골라 놓고 목차와 내용을 훑어 본 뒤 100여권의 책을 한꺼번에 구입한 것이다. 책값만 200여만원이 들었다. 그는 몇날 며칠을 건축 관련 책에 파묻혀 살았다. 그러던 중 그의 가슴에 잔잔한 울림을 준 책이 있었다. 그의 집을 설계한 건축가 이일훈씨의 ‘모형 속을 걷다’였다.

직업을 속일 수 없듯 국어교사인 그는 집을 짓는 것에서도 전통을 계승하고 싶었다. 그때까지는 건축에서 전통계승은 기와를 얹고 나무기둥을 세우고 툇마루를 놓는 등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씨는 책을 통해 건축에서 전통계승의 핵심을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건축자재가 기술혁신을 통해 새롭게 변해가는 상황에서 전통건축은 형태가 아닌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 이씨의 주장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는 연신 공감했으며 이씨의 주장이 경이롭게만 느껴졌다.

그는 인터넷을 뒤져 이씨의 건축설계사무소 전화번호를 찾아내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그가 주택 설계를 맡기고 싶다고 얘기하자 이씨 회사는 처음에 정중하게 거절했다. 대형건축물이나 소형 주택을 설계할 때 들어가는 운영비나 노동력이 비슷한 상황이어서 굳이 소형 주택을 맡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당장 건축을 할 것도 아니고 3년쯤 뒤 목돈이 생기면 건축할 계획이다. 앞으로 3년 동안 틈틈이 생각하고 설계를 해주면 된다”고 간곡하게 요청한 끝에 집 설계를 이씨에게 맡겼다.

그때부터 그는 이씨와 장문의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그는 첫 편지에 건축과 관련해 평소 궁금하게 생각했던 내용을 중심으로 A4용지 10장으로 정리해 보냈다. 이씨는 건축주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건축설계를 한 사례가 없다고 밝혔지만 잊지 않고 답장을 했다. 2005년 8월 23일 첫 메일을 주고받은 끝에 2007년 5월 2일 드디어 집짓기를 시작했다. 이메일로 지은 집은 그해 12월 30일 완공됐다. 20살이나 나이가 차이 나는 이들은 지금도 친구처럼 지낸다. 그는 이씨를 ‘가장 나이 든 친구’로, 이씨는 그를 ‘가장 젊은 친구’로 남들에게 소개하며 격의 없이 지내고 있다. 집이 맺어준 인연인 셈이다.

그의 집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공간은 서재다. 아치형태의 천장 높이가 4.7m여서 집중도가 높다. 당초 평지붕으로 할 계획이었지만 둥근 형태로 짓자 늘어난 공간을 몸이 감지해 개방감은 물론 몰입도가 뛰어났다.

송승훈씨의 집은 눈길 닿는 곳마다 책이 쌓여 있다. 낡은 책이 있는 거친 돌집이라는 집 이름이 너무나 어울린다. 그는 직접 지은 집에서 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물론 전국의 동료 교사들을 위한 공부 모임 공간으로 내놓는 것을 사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로 생각하며 지낸다. 남양주=서상배 선임기자

그는 일반인들에게 바른 집 짓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그는 교사 모임을 중심으로 일 년에 대여섯 차례씩 건축 관련 강연을 하고 있다.

건축에서 가장 고려해야 할 점으로 그는 보기에만 좋은 천하절경의 입지는 사는 데 그렇게 중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도시의 아파트에 살다 보면 대부분 시골에 전원주택을 지어 살고 싶은 욕망을 갖는다. 일반적으로 경치가 좋은 산속을 낮에 가보면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지만 밤에 가보면 상황이 전혀 달라진다는 설명이다.

자연이 아름다운 곳의 밤은 무서운 곳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예전에 한강이 보일 정도로 아름다운 곳을 찾아내 당장 땅 계약을 하려고 했지만 주인이 값을 비싸게 불러 매입하지 못한 곳이 있었다. 나중에 우연찮게 밤중에 가서 보니까 너무 무서워 오싹할 정도로 살벌한 지역이었다. 그때 땅 계약을 하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했다. 그는 새로운 곳을 찾지 말고 오래된 마을의 귀퉁이에 터를 잡고 집을 짓는다면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늘 도시에 거주하면서 생활하니까 밤이 무섭다는 거를 인식 못하지만 순간적으로 마음을 뺏겨 외딴곳을 구입한다면 생활하기가 순탄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집을 짓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대부분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하는 것에 대해 인색하다며 이 또한 이겨내야 살기 편한 집을 지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예술노동에 돈을 지불하는 것은 손해라는 생각이 커 집장사의 겉만 번지르르한 설계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평생 한 번 짓는 집을 허투루 짓지 말고 건축 관련 책 100여권을 사서 읽은 다음 맘에 드는 건축가를 선정해 설계를 맡기라고 권했다. 전문가에게 의뢰하지 않고 건축하는 것은 비극이라고까지 단정했다. 가능하다면 땅을 구입할 단계부터 건축가에게 자문을 구한다면 실패 없이 집을 지을 수 있다고 얘기했다.

그는 집을 지을 때 데크 대신 툇마루를 만들면 정말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외부 강연이나 수업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하면 그는 집안으로 곧장 들어가기보다는 툇마루에 누워 시원한 바람을 쐬고 하늘의 별을 구경하면 몸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면서 재생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툇마루는 신기하게 지친 몸에 활력을 되찾아 주는 힘이 있다고 그는 믿는다. 빨래를 널고, 여름에는 종종 밥을 먹고, 텃밭을 가꾸다 잠시 쉴 수 있는 툇마루가 그의 집에는 4곳에 있다.

방마다 맞창을 낼 것을 그는 새로 집을 짓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권한다. 맞창을 내면 바람이 잘 통해서 집안의 공기가 순환되고 여름에 시원함을 느낀다고 했다. 맞창 덕분에 그는 한여름에도 에어컨을 거의 틀지 않고 지내고 있다.

그의 집은 동료 교사의 공부모임장소로 자주 이용되고 있다. 그가 속한 전국 국어교사 모임은 회비를 내는 정회원만 3000여명에 이른다. 이들의 공부모임이 60여개에 이르고 있으며 그가 활동하고 있는 독서교육 분과 회원도 전국적으로 60여명에 이른다. 이들은 물론 주변에 소개를 받고 찾아오는 교사들이 심심찮게 그의 집을 찾는다. 그의 집은 일년 내내 공부모임으로 북적인다.

 

그는 청소를 잘하고 가는 조건으로 집을 빌려준다. 일반적으로 집을 새로 짓고 나면 1년 동안 손님을 초대하지만 청소문제로 부부싸움을 크게 한판 하고 나면 손님을 맞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그는 집을 빌려주는 첫 번째 조건으로 청소를 완벽하게 하는 것으로 정했다. 그는 인원수에 따라 역할분담을 통해 빠른 시간에 깨끗하게 청소하는 방법을 적은 청소 설명서를 비치해 놓고 있다. 1층만 사용하는 경우에도 2층을 함께 쓸고 손걸레로 닦아야 하는 규칙에 이의를 제기하는 방문객은 없다. 설명서에는 선물 없이 그냥 편하게 방문해달라고 적혀 있었다. 선물을 주고 싶다면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주면 고맙겠다고 밝혔다. 사람과 책을 좋아하는 그의 넉넉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집 건축을 계기로 그에게는 전국의 건축물을 찾아다니며 구경하는 취미가 생겼다. 개인주택은 안으로 들어가 제대로 구경할 수 없지만 박물관 등 뛰어난 건축물이 많아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건축물을 찾아 답사하고 기록한다.

그는 건축에 관심만큼이나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교사다. EBS에서 ‘최고의 교사’의 교사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대입수능 출제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현재의 수능 국어는 읽기능력이 핵심이므로 책을 많이 읽어야 원하는 점수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많이 읽어도 안 되는 것은 제대로 읽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읽은 책을 주제로 누군가와 심도 있게 얘기를 하다보면 실력이 늘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남양주=박연직 선임기자 repo21@segye.com

 

송승훈은 △1972년 서울 출생 △경기 광동고 국어교사 △문화관광부 문화예술교육과 문학소위 위원 △교육부 학교도서관진흥위원회 위원 △나의 책 읽기 수업, 한 학기 한 권 읽기, 함께 읽기는 힘이 세다, 제가 살고 싶은 집은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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