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한국경제, 기업들의 미래를 낙관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렇다 해도 혁신은 해야 합니다.”
딜로이트컨설팅 김경준 부회장은 9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기업들이 삼각파도를 맞았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부회장이 언급한 삼각파도는 △디지털화(비즈니스 모델 격변) △무역질서 재편 △정책 리스크다.
김 부회장은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규제 강화 조치를 지목해 “삼성에 저런 일이 불거진다는 건 10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라며 “정책이 무능하고 반(反)기업적이어서 별 대안이 없지만, 디지털화와 무역질서 재편은 내부 혁신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기업들은 ‘지금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고 전했다.
―애자일(agile·민첩한) 조직이 결론인가.
“그렇다. 규모와 속도를 동시에 잡자, 그게 핵심이다. 작으면 빠르고 크면 안정감이 있다. 독수리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드론 수백대가 독수리 모양으로 날고 있는 거다. 매우 빠르게 움직이는 작은 조직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는 거다. 7∼8년 전 등장해 2∼3년 전부터 국내에서도 화두가 됐다.”
―구성원 만족도가 낮은데.
“혁신은 다이어트와 같은 거다. 우리는 버리는 걸 못 한다. 자산, 인력을 늘리든 줄이든 정비를 해야 새로운 데 집중할 수 있다. 노조만 해도 어떻게 손 대나. 대대적인 혁신을 추구하기엔 사회경제적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다. 지난 10년을 보면 우린 문제해결 능력을 상실했다. 기업도 큰 디자인을 갖고 접근하지 못했다. 혁신이 캠페인 수준인 이유다.”

―주요 그룹이 세대교체됐다. 서구 교육을 받은 이들이다.
“디지털, 글로벌에 대한 지향점이 많은 사람들이다. 잘해보고 싶을 것이다. 혁신의 허브는 미국이다.
―지금 노력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대평원 생태계를 봐라. 일견 평화롭고 무질서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생존과 경쟁의 엄정한 질서가 있다. 천국처럼 보이는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기업들이 부여하는 자유만 보고 이면의 냉혹한 질서를 이해하지 못하면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 수시로 진행되는 다면 평가, 목표 달성 등 업무 긴장도가 높다. 자율적 퇴사자 발생이 여느 기업과 다르지 않다.”
―컨설팅 제안이 많은가.
“불황이면 우리도 불황이었다. 기업들이 저성장 기조를 보며 3∼4년간 대형 투자 등에 조심했다. 그런데 지금은 ‘더는 이렇게 있을 수 없다’ 하는 분위기다. 유통만 봐도 1년 만에 오프라인이 무너졌다. ‘아, 우리도 디지털화에 준비해야 하는구나’라는 각성이 생겼다. 의뢰와 매출이 1년 새 두 자릿수 늘었다. 불황의 역설이다.”
조현일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