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들의 시대에서 인간의 운명은 주로 정치적인 영역에서 그 의미가 표현된다.”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의 말이다. 미국 문학평론가 폴 돌란은 저서 ‘정치와 소설’에서 이 구절을 맨 앞에 세웠다. 20세기 전반기에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은 뒤 사람들은 정치의 세계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나아가 인간의 의식과 정치는 불가분의 관계가 됐다. 돌란은 “현대의식의 많은 부분이 정치구조에 구현되고, 이 구조들은 차례로 그 의식을 형성한다”고 했다.
소설은 정치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정치는 행동을 중시하지만 소설은 개인적인 동기에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돌란은 정치와 소설의 관계를 이렇게 정의한다. “소설은 인간적·도덕적·심리학적 그리고 미학적 현상으로서의 정치에 대한 의식적인 또는 무의식적인 경험을 다룸으로써 그 특유의 지식을 제공하여준다.” 소설과 정치가 만나는 지점에 대해선 이렇게 설명한다. “자신이 전적으로 신봉하지 않는 세계 속에서 자기의 위치를 추구하는 인간을 주인공으로 하여, 소설은 그 특별 주제로서 국가 내에서의 그리고 국가 밖에서의 인간 경험을 다룰 수 있었다.”
돌란은 이와 관련해 상상력의 원천으로서의 예술을 강조한다. “정치에서 예술은 필수적인 것으로, 이는 정치가가 그 자신이 상상하는 왕국만을 통치할 수 있으며 시민은 그들의 정부가 어떠해야 한다는 필수적인 생각을 하는 한에 있어서만 통치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 상상력이 차지하는 공간은 제한적이다. “불행하게도 정치는 고상한 예술이 아니다. 정치소설 또한 한때 그랬던 것처럼 도덕적 심판에 더는 관여하지 않는다. … 실로 지저분한 워터게이트 스캔들과 그 행위의 기록으로 보존되는 테이프들은 리처드 닉슨의 상상력이 형편없이 빈약한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자신의 머리로 시시한 도둑들의 나라나 상상하였던 것이다.”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된다. 정치인들은 서슴없이 거친 말을 주고받는다. 협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쩌다 대화에 나서더라도 끊겼다가 이어지기를 되풀이하다보니 적기에 의미있는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한다. 정치인들의 상상력이 어느 수준인지를 알 수 있다. 닉슨의 초라한 상상력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다.
정치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생각해볼 때다. “인간 최초의 문제는 어떻게 종족으로써 생존할 수 있는가를 배우는 것이었다. 그 다음의 문제는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것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정치는 인간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 실행에 옮기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사적인 관심과 공동의 원칙 사이의 갈등이 비극의 근원이며, 정치소설에 특유한 비극은 어떤 정치질서가 그것이 약속한 목표를 실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즉 정의롭고 인도적이며 자유롭다고 인정된 공적 질서 내에서 사적인 욕망들을 실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돌란은 영국 작가 조셉 콘래드의 소설 ‘노스트로모’를 언급하면서 “‘노스트로모’에서 정치에 함축된 의미는, 공공적 질서란 숭고한 동기라는 것이 개인적 욕망을 감추는 슬로건이 되는 개인적 투쟁의 총체를 말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사적인 욕망과 공적 질서는 조화되기보다는 충돌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여기서 정치인들이 역할을 해야 한다. 개인들이 공적 질서를 받아들여 이에 적응하게 하거나, 아니면 개인들의 요구에 맞추어 공적 질서를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갈등을 방치하면서 권력을 얻기 위한 투쟁에 몰입하는 정치인들은 본연의 임무를 뒷전으로 미뤄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정치인들 사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유형이다.
정치에서는 힘, 즉 권력이 가장 중요한 도구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힘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이 물질주의적 시대에서 정치는 분명히 힘이었으며 정치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힘을 사용하여 이념이 승리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 가장 반동적인 군국주의자나 천한 무정부주의자도 모두 어떤 힘을 장악하고 있으며 적절한 질서를 보존하거나 혹은, 그것을 세운다는 핑계로 그 힘을 사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정치가 어떻게 본연의 기능에서 멀어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책을 번역한 정치학자 라종일은 역자 서문에서 “만약 정치인들이 소설을 읽는다면 그래서 ‘엄청난 상상력의 결핍’을 극복할 수 있다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사람답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른다”고 했다. 정치인들이 이제라도 소설을 읽으면서 상상력을 키우길 바란다. 그래야 정치에서 사람 냄새가 날 것이다. 돌란은 이런 말을 했다. “역사란 개인과 정치 사이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는 사람 편이다.” 지금의 정치를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까. 정치인들은 이런 생각을 한번이라도 해 봤을까.
박완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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