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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송의 위로…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

입력 : 2019-07-13 18:00:00 수정 : 2019-07-13 17: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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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링 인 울진 / 태백산맥 오지 중의 오지 / 붉은 빛깔 소나무 군락지 / 세상 소음 차단한 듯 고요 / 무념무상… 나를 찾는 시간 / 하루 80명에만 허 하노라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울창한 소나무숲 속.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마치 블랙홀이 모든 소음을 빨아들인 듯 고요하다.

지그시 눈을 감고 깊은 숨을 들이쉰다. 허파 깊숙하게 파고드는 수백 가지 허브와 꽃 향기, 젖은 흙, 풀 내음.

고요를 깨우는 것은 오로지 새 소리와 바람결에 나뭇가지와 잎이 서로 부대끼는 바삭거림.

시험, 취업, 승진, 결혼, 육아, 이혼. 순간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헤어날 수 없는 이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는 듯하다.

마음 치유가 절실하다면 오지를 선택하라.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일수록 좋다.

금강송 군락지서 찾은 진정한 마음치유

 

휴식은 무언가를 채우는 것이 아니다. 불필요한 것을 비우고, 정리하고 나를 찾는 시간이다. 인파가 몰리는 번잡한 휴가지는 딱 질색이라면, 무언가 마음을 정리할 고요한 곳을 찾는다면 숲보다 좋은 곳은 없다. 낙동정맥(태백산맥) 깊숙하게 자리 잡은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는 오지 중의 오지. 이곳에 놀랍게도 쭉쭉 뻗은 붉은 빛깔의 금강송이 신비로운 자태로 거대한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최근 ‘금강소나무숲길’이 개방되면서 인간의 발길을 허용했다.

다만, 이곳에 가려면 각오를 좀 해야 한다. 경북 영주에서 봉화를 거쳐 울진으로 넘어가는 36번 국도에서 좌회전해 917번 지방도로 접어든 후에도 꼬불꼬불한 비포장 길을 15㎞는 더 들어가야 금강송 숲을 만날 수 있다.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험한 길로 악명 높은 36번 국도가 개통된 것은 1980년대 초. 이전에는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제대로 없었지만 덕분에 이곳은 오지로 남아있었다.

숲 초입에 들어서면 마치 왕을 영접하듯, 길 양옆으로 빽빽하게 들어선 금강송이 힘차게 하늘로 솟아올라 있다. 여의도보다 8배나 큰 1800ha에 수령 200년이 넘는 금강송이 무려 8만그루가 자라고 있다고 한다. 일반 소나무와는 다른 붉은 빛깔을 띤 금감송은 휘어짐이 거의 없이 대나무처럼 곧게 뻗어 타임머신을 타고 원시림으로 순간이동을 한 듯하다.

500년 수령 금강송.

하루 80명에게만 허용된 미지의 숲

 

금강송 군락지로 들어서서 본격적으로 산길이 시작되기 직전, 금강송 전시실 앞에는 이 숲의 가장 어른인 500살 먹은 금감송이 위용을 뽐내고 있다. 대략 1482년생으로 조선 성종 때 싹이 터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을 모두 거쳤으니 우리나라의 역사를 내내 지켜본 셈이다. 참 대단하다. 성인 두 명이 팔을 벌려도 껴안을 수 없는 굵직한 몸은 강하고 힘차게 하늘로 뻗어 있다. 하지만 가지는 이러저리 뒤틀려 500년 풍파를 견딘 장엄함마저 느끼게 한다. 숲길을 오르다보면 못난이송, 미인송 등 다양한 전설을 지닌 금강송을 만난다. 걷다가 힘들면 금강송의 두툼한 껍데기를 손으로 만져보고 금강송을 안아도 보자. 천천히 숲을 음미하다 보면 다시 맑아진 내 영혼도 마주하게 된다.

금강송 군락지 입구에서 임도를 따라 오른 뒤 숲으로 내려오는 길은 빠르게 걸으면 1시간30분 정도, 금강송이 어우러진 풍경을 감상하며 쉬엄쉬엄 걸으면 2시간 정도 걸린다. 금강소나무숲길을 좀 더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난도에 따라 개발된 6개 구간을 체력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짧게는 9㎞에서 길게는 16.3㎞ 코스로 4시간에서 7시간이 소요되니 모두 쉬운 코스는 아니다.
 

임금 위한 소나무 금강송

 

숲의 역사가 매우 깊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 숙종 6년(1680)부터 이 숲을 관리하기 시작했으니 300년이 훌쩍 넘는다. 36번 국도에서 917번 지방도를 타고 7km쯤 들어가면 길 왼쪽 소광천변 바위에 23자의 한자가 새겨진 ‘울진 소광리 황장봉계표석(경북 문화재자료 제300호)’이 나타난다. “황장목의 봉계지역은 생달현·안일왕산·대리·당성의 네 지역이며, 관리책임자는 산지기 명길이다”라는 내용이다. 황장목(黃腸木)은 임금의 궁궐을 짓던 금강송의 다른 이름. 숙종 때 조선 왕실에서 사용하는 황장목이 있는 산을 지정해 일반인의 벌채를 금지하는 정책을 도입했는데, 소광리 금강송을 보호하기 위해 표석을 세웠다.

금강송이 왕실의 특별관리를 받은 것은 일반 소나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목재가 우수하기 때문에다. 나이테가 3배 더 촘촘할 정도로 단단하고 뒤틀림이 없으며 송진이 적어 쉽게 썩지 않기 때문에 궁궐 건축에는 반드시 금강송을 사용했다.

금강송테마전시관.

여유가 있다면 숲 속에서 이틀 정도 머물면서 마음의 때를 어느 정도 벗길 수 있다. 최근 체류형 산림휴양시설 ‘금강송 에코리움’이 문을 열었는데 최대 15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박시설 20개동과 금강송 테마 전시관, 금강송 치유센터, 치유길(탐방로), 특산품 전시장이 마련됐다. 에코리움은 금강송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환경 속에 푹 파묻혀 있어 북적대는 기존 여름 피서지와는 전혀 다른 색다른 휴식을 즐길 수 있다.

단, 체험과 휴식을 하는 수련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경우만 먹을거리와 숙소가 제공된다. ‘숲을 통한 쉼과 여유 그리고 치유’라는 콘셉트의 체험 수련은 1박2일 코스. 금강송의 역사와 문화 강의, 전시관 체험, 금강소나무숲 걷기, 소나무비누 만들기 등으로 구성됐고 자유수련 시간에는 스파, 황토찜질방도 이용할 수 있어 가족 단위로 조용한 휴가를 보내기 좋다.

금강송숲길은 인터넷 사전예약을 통해서만 출입할 수 있다. 예약은 사단법인 금강소나무숲길(www.uljintrail.or.kr)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며 멸종위기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구간별로 하루에 80명만 이용할 수 있다. 또 오지탐방인 만큼 탐방객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숲 해설가와 함께 탐방에 나서는데 재미있는 숲 이야기는 보너스로 제공된다. 금강소나무숲길 안내센터를 통해 자세한 금강소나무숲길 탐방 정보를 안내받을 수 있다.

 

울진=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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