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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의세상보기] 왜 이혼하지 않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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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7-08 23:24:21 수정 : 2019-07-08 23:2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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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얽매던 규범·가치 사라져 / 부부관계 질적 측면 가장 중시 / ‘백년해로’ 부부 조사해보니 / 사랑 넘어선 신뢰·의지 고백

한국의 조(粗)이혼율이 47%대를 기록하던 2000년대 초반, 당시 ‘2쌍 중 1쌍 이혼하는 시대’라는 기사 제목이 다양한 매체에 종종 등장하곤 했다. 하지만 이 기사 제목은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한다기보다는 다소 호도하는 측면이 있었다. 조이혼율이 50%에 육박한다고 해서 결혼한 부부 2쌍 가운데 1쌍이 이혼한다는 의미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이혼율은 이혼 통계로 자주 활용되고 있긴 하지만 문자 그대로 조악한 지표이다. 조이혼율은 인구 1000명을 기준으로 결혼한 쌍의 숫자 대비 이혼한 쌍의 숫자로 계산한다. 그러니까 이혼율 47%라 함은 그해 100쌍이 결혼했고, 같은 해 47쌍이 이혼했다는 단순한 의미이다. 대체로 결혼 연령은 제한돼 있지만, 이혼 연령은 신혼이혼에서부터 황혼이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돼 있기에, 조이혼율은 우리가 체감하는 이혼보다 과도하게 잡히는 것이 관례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분명한 것은 동일한 방식으로 계산한 조이혼율이 1980년대 초반에는 5%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한국의 부부관계 실태를 조사하던 연구팀은 ‘왜 이혼하지 않으시나요’라는 일면 도발적인 질문을 던져 보았다. 그 결과 예상했던 대로 ‘자녀 때문에 이혼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높은 가운데, ‘배우자 잘되는 꼴(?) 보기 싫어서’ 이혼을 꺼린다는 응답이 뒤를 이어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이혼율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에서 조이혼율이 53%로 정점을 찍던 1980년대 초반, 실제 이혼율을 파악하고자 부부를 대상으로 추적 조사를 한 적이 있다. 만만치 않은 비용과 오랜 시간을 소모하며 추적 조사를 완수한 결과, 미국에서는 혼인신고를 한 부부 중 약 38%가 7년 이내에 이혼을 하는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조이혼율과 실제 이혼율 사이에 적지 않은 괴리가 존재함을 실감 나게 해준 조사 결과였다.

한편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이혼율 곡선이 꾸준히 상승세를 타는 이유로는 결혼의 의미 자체가 변화했음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곧 결혼이 제도(institution)적 성격을 벗어나 관계(companionship)적 성격을 강화해가는 과정에서, 결혼의 중심이 부모자녀로부터 부부로 옮겨가면서 나타난 결과가 가족 안정성의 상실이요, 이혼율 증가라는 입장이다. 과거 제도결혼 시절에는 부부가 각자 생계 부양자 혹은 전업주부로서 맡은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자녀양육 및 교육에 전념하면서 결혼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반면, 오늘날은 우애결혼하에서 부부관계의 친밀성이나 질(質)적 측면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음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이제 너나없이 이혼을 현실적 대안으로 심각하게 고려하게 된 상황에서, 미국에서는 이혼의 위기를 극복하고 백년해로에 성공한 부부를 대상으로 ‘왜 이혼하지 않으셨나요’를 주제로 심층 인터뷰가 진행된 적이 있다. 그 결과 의미심장하게도 백년해로에 성공한 부부들은 자신들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면 신뢰, 존경, 의지, 위로 그리고 힐링이란 단어를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우리 부부는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지요. 하지만 낭만적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지고 대신 배우자를 향한 믿음과 존경하는 마음이 사랑의 자리에 들어서게 되었답니다.” “우리는 혼자일 때보다 둘이 함께일 때 더욱 안정감을 느낍니다. 부부 중 어느 한편이 일방적으로 의존하기보다는 상호의존적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합하지요.” “우리 부부는 든든한 의지가 될 뿐만 아니라 배우자를 통해 진정어린 위로와 깊은 힐링을 받게 됩니다”라고 고백하더라는 것이다. 상대를 보면 가슴 떨리고 안 보면 보고 싶은 낭만적이고 열정적인 감정 못지않게, 편안하고 친숙하며 익숙한 감정도 역시 사랑임을 이들 부부는 경험을 통해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때 이혼은 가족 해체의 주범이라는 관점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됐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대체로 불행한 부부관계의 해소라는 시각에서 문제 해결의 한 방식으로 보는 견해가 보다 일반적이다. 다만 부부관계는 해소되지만 부모자녀 관계는 그대로 남는다는 점에서, 부부의 이혼이 자녀에게 미치는 장·단기적 영향 및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다.

‘송송커플’이 합의이혼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던 날, 종일토록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이들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어쩌면 대중에게 비친 자신들의 이미지가 상상 이상으로 중요했을 이들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이혼을 선택하기까지는 갈등과 고통, 분노와 반목의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을 것이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속에서 연기했던 낭만적 사랑이 결혼 후 성숙한 신뢰로 승화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와 힐링이 됐더라면 금상첨화였을 테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안타까운 결과에 대해서는 본인들이 책임지도록 할 일이다.

‘판단력이 부족해서 결혼하고, 인내력이 없어서 이혼하는데, 기억력이 흐려져 재혼한다’는 신세대 유머가 있다. 그런가 하면 ‘이혼의 원인은 바로 결혼’이라는 명언도 있다. ‘전쟁터에 나갈 때는 한 번 기도하고 배 타러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고, 결혼할 때는 세 번 기도하라’는 러시아 속담도 있다. 결혼이 전쟁터에 나가거나 배 타러 나가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일임을 일찍이 알았던 셈이다. 과거 결혼을 규제하던 규범과 가치의 많은 부분은 이제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이혼의 경우도 물론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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