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일 북한 매체의 보도로 알려진 최인국(73)씨의 갑작스러운 월북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가 월북 배경으로 부모의 유언을 언급한 점으로 미뤄 가족사가 배경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된다.
최씨는 천도교 관련 단체인 동학민족통일회(동민회)에서 대외협력국장, 공동의장 등을 역임했다. 그에 앞서 1986년 월북한 아버지 최덕신은 육군 중장으로 예편한 뒤 외무부 장관(1961∼63년)까지 지냈다. 그는 1967년부터 제7대 천도교 교령을 맡기도 했다. 교령은 천도교의 최고지도자에 해당한다. 최 전 장관은 서독 대사를 지낼 당시인 1967년 발생한 동백림 사건과 관련해 박정희 정권과 불편해졌다. 이런 이유 등을 이유로 최씨 부부는 1976년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평안북도 의주 출신인 그는 이후 1981년 북한을 한 차례 방북했고, 1986년 아내와 월북했다. 6·25전쟁 이후 남한 측 인사로는 최고위급의 월북이었다.
최 전 장관은 북한에서는 천도교청우당의 중앙위원장을 맡아 활동했다. 그가 북한에서도 고위직을 이어갈 수 있었던 데는 부친인 최동오의 배경이 작용했다. 중국 지린성 소재 화성의숙 교장을 지낸 최동오는 김일성 북한 주석을 가르친 인연이 있다. 김일성이 ‘재미교포 최덕신과 한 담화’(1978년 11월18일) 자료엔 김 주석이 “최덕신 선생이 과거(남한)와 결별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조국을 찾아온 데 대하여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라고 하는 대목이 나온다.
최 전 장관은 북한에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 등으로 활동하다 입북 3년 만에 사망했다. 이후 아내 류미영씨는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을 이어받았고, 단군민족통일협의회 회장,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 등을 지냈다. 류씨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참모총장을 지낸 유동열 선생의 수양딸로 2016년 11월23일 당시 95세로 북한에서 사망했다. 이때 한국에 거주하던 최씨는 방북 승인을 얻어 북한을 찾았다.
최씨 가족은 북한 고위직이라는 특수한 신분으로 인해 연락을 이어갔다. 어머니 류씨는 2000년 8월 제1차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 당시 북측 단장으로 서울을 방문했다. 이때 당시 남한에 살던 아들 최씨와 상봉했다. 대북 소식통은 “최인국씨는 이후 여러 차례 공식 방북하며 어머니와 만나왔다”며 “분단 상황에서 가장 자유롭게 만나온 이산가족일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최씨는 2001년 이후 가족상봉이나 성묘 등을 목적으로 12차례 공식 방북했다.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6년 말, 어머니 류씨가 위독해지자 남북관계 냉각기에도 아들 최씨의 방북은 허가됐다. 문재인정부 들어서도 류씨의 사망 1주기를 맞아 신청한 방북 허가는 정부의 첫 개인 자격 방북으로 허가됐다.
이 같은 배경에도 부모가 모두 사망한 상황에서 단행된 최씨의 월북에는 의문점이 여전히 남는다. 일각에서는 방북할 때도 북측 호텔에서 머무르지 않고 어머니의 자택에 머물렀을 만큼 부모에 각별했던 그의 마음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모친 사망 이후 최씨가 집과 차량 등을 처분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북한 당국이 이를 보존한 점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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