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는 한·일 관계 악화와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가 “양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한·일 정상회담 재개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남 대사는 4일 도쿄신문을 방문해 스가누마 겐고(菅沼堅五) 사장을 만나 “한국에서는 (이번 사태의) 원만한 조기 해결을 바라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고 신문이 5일 보도했다. 남 대사는 “중단된 한·일 정상회담의 재개를 목표로 일본 측이 응하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을 만나 “남 대사가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희망한다는 얘기를 했다고 들었다”며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주일대사는 대사의 역할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일본에서 징용배상 판결과 이에 따른 한·일 관계 문제는 외무성을 비롯한 실무 단위 수준을 떠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직접 결정·주도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즉 한·일 갈등은 정상 간 ‘통 큰 합의’가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통 큰 합의’에 따른 외교적 해결을 위해선 정상 간 소통 채널을 만들어 의견을 나누고 신뢰를 쌓는 작업이 중요하다. 그 첫걸음이 한·일 정상회담이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이번 사태에 대해 “양국 정상이 만나 ‘빅딜’을 통해 못 풀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국무총리실 차원에서 한·일 관계 문제에 접근해 왔지만,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남은 것은 정상 간 직접 담판이라는 얘기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도 “정상회담을 빨리 열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사전 정지 작업 없는 정상회담은 불가능하다.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대응 조치 등에서 사전 협의를 하면서 사태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하지만 당장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은 일본의 부정적 기류로 쉽지 않을 전망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달 말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앞두고 일본 정부에 정상회담 개최를 계속 타진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 이에 따라 일본이 거부하더라도 우리 측이 정상회담을 적극 제안함으로써 대화에 열려 있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정상회담은 지난해 9월 제73차 유엔총회에서 46분간 만남이 마지막이다. 지난해 10월 강제징용 판결이 난 뒤 그해 11월 열린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 에이펙(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G20 정상회의 어디에서도 짧은 악수 외에 양자회담은 성사되지 않았다. 지난달 G20 때에도 8초 악수가 전부였다.

◆文대통령, 30대 그룹 총수 만나 ‘日 수출 규제’ 대책 찾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내주 국내 주요 대기업 총수들과 간담회를 갖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5일 알려졌다. 지난 1월15일 기업인과의 대화 이후 6개월 만에 문 대통령과 총수들의 대면이 다시 이뤄지는 것이다. 만남 시기는 오는 10일 전후이고 참석 대상은 국내 30대 그룹 총수가 중심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청와대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했던 만큼 10일 간담회가 성사되면 자연스럽게 이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통령은 총수들로부터 현장의 어려움을 상세히 듣고 대책에 관해 의견을 나눌 가능성이 크다. 다만 청와대는 “검토 중인 사안으로, 아직 일정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고 여지를 남겼다.
문 대통령은 최근 일본 수출 규제에 3가지 대응 방안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정치적으로 대응하면 상황이 더욱 복잡해질 수 있으니 경제 논리로 대응하고 피해 우려 기업들을 적극 만나 소통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또 관련 부품 산업의 국산화에 적극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의 이런 지침에 따라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은 국내 주요 5대(삼성·현대차·SK·LG·롯데) 그룹 총수를 만나 어려움을 듣고 대책을 모색하기로 했다. 그동안 기업 총수와의 만남은 부담스러워 꺼려왔으나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문 대통령까지 나설 만큼 경제·외교적 파장이 작지 않아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핵심 관계자는 “전방위적으로 기업들의 목소리를 듣고 해결 방안들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전날 외교적 방안 등을 내놓았으나 부족하다는 지적에 따른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노영민 비서실장은 지난 4일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의 만찬에 참석해 일본의 수출 규제와 관련한 다양한 대화를 나눴다. 또 김상조 정책실장과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최근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 임원진을 접촉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김 실장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함께 5대 기업 총수 면담을 추진 중이다. 홍 부총리는 기자들과 만나 “(5대 그룹 총수를) 못 만날 이유는 없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 각 단위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매일 하며 많은 의견을 모으고 방안을 찾고 있다”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협약에 기초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위반이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적극 알리기로 했다. WTO 제소 결정은 이 조치의 일환이다. 특히 한국의 반도체 생산에 문제가 생기면 이를 수입하는 다른 나라도 피해를 본다는 논리를 집중적으로 펼 계획이다. 이날 열린 민관 외교전략조정회의에서도 일본 조치 대응책이 집중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도 거들었다. 김 실장은 이날 취임 인사차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를 예방해 “국익을 지키기 위한 길에 정부, 재계가 따로 없다고 생각한다”고 야당의 협조를 구했다. 그는 “정부가 부족하고 미숙한 부분이 있다고 느끼더라도 힘을 실어주면 일본과의 문제를 조속히 원만하게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황 대표는 “우리의 큰 목표는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해 민생, 시장, 안보까지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며 “우리 당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설립됐다가 해산 절차를 밟고 있는 화해·치유재단 문제도 양국 갈등의 불씨로 남아 있다.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관방 부장관은 “한국 정부의 재단 해산 방침은 한·일 합의에 비춰볼 때 심각한 문제”라며 수용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홍주형·김달중·장혜진 기자, 도쿄=김청중 특파원, 세종=박영준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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