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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6월, 두 편의 ‘각본 없는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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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7-04 23:48:12 수정 : 2019-07-04 23:4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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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은 두 편의 ‘각본 없는 드라마’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먼저 9일 새벽 20세 이하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 8강전 후반 인저리 타임이 다 끝나갈 무렵 동점골을 넣어 승부를 연장으로 이끌더니, 승부차기에선 첫 두 명의 키커가 실축하고도 역전승을 일궈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선수들의 의지와 집중력은 드라마 같은 명승부를 빚어내며 ‘36년 만의 4강 신화’를 썼다.

유태영 국제부 기자

그로부터 20여일 뒤, 두 번째 드라마가 판문점에서 펼쳐졌다. 6·25 전쟁 당시 지루한 휴전 협상이, 1976년 미군 장교 2명이 사망한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났던 바로 그곳. 70년 북·미 적대의 역사를 상징하는 장소에서 양국 정상이 마주 서서 손을 맞잡았다. 미국 대통령과 북한 국무위원장은 남북을 가르는 경계석을 넘어 북쪽 지역까지 다녀온 뒤 남쪽 구역 자유의집에서 53분간 사실상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을 가졌다.

6·30 판문점 회동은 하루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초청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응하면서 성사됐다. 내내 어수선했던 중계 카메라 동선, 취재 과정에서 일어난 백악관 대변인과 북측 경호원 간 몸싸움,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저 선(군사분계선)을 넘어가도 되느냐”고 물어봤다는 일화까지 종합해 보면, 이날의 드라마에도 사전 각본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일각에선 이날 회동을 두고 재선을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리얼리티 쇼’라고 깎아내린다. 물론 북한 비핵화까지 갈 길이 많이 남은 이상 과도한 의미 부여를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의심과 비관, 회의론으로는 한 발짝도 못 나아간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판문점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핵심 장소로 떠오른 것은 지난해 4·27 남북정상회담 즈음부터다. 애초 제1차 북·미 정상회담 후보지로 떠올랐고, 이후에는 ‘남·북·미(·중) 3자(4자) 정상회담 내지는 종전선언’ 장소로 어떠냐는 아이디어가 제시됐다. 하지만 시기와 여건, 경호·의전상 문제 등 각종 현실론에 부딪혀 번번이 좌초돼 왔다.

하지만 이런 상상력을 포기하지 않았고, 문 대통령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장에서 만나도 되는 트럼프 대통령을 굳이(야당 의원으로부터 ‘굴욕외교’라는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한국으로 초청했기에 판이 깔린 것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과감한 결단과 추진력, 김정은의 화답 등이 더해져 판문점의 드라마가 만들어졌다.

이날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은 북·미 양측 경호원들의 모습이었다. 지구상 마지막으로 남은 냉전의 화약고에 뒤섞여 있는 그들의 표정에 나타난 묘한 긴장감을 바라보며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내 친구”라고 부르며 맞이했던 장면이 겹쳐 떠올랐다. 제아무리 트럼프와 김정은이라 해도 신변 안전에 확신이 없었다면 ‘쇼’는 성립되지 않았을 터. 협상 당사자들에게 필수적인 상호 신뢰의 일단이 이들 장면에서 엿보였다.

세 정상은 다시 세계 여론의 주목을 받으며 앞으로 나아갈 추진력을 얻었다. 이제 궤도에서 이탈하려는 쪽은 누구든 큰 부담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스무 살 청년들이 내친김에 결승까지 올라갔듯, 1992년 이후 매번 도돌이표를 찍어 왔던 북핵 역사가 이제 마침표를 향해 나아가기를 기대해 본다.

 

유태영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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