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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역사 - 7월1∼7일] 폭군으로 시작해 명군이 된 당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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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6-30 23:28:56 수정 : 2019-06-30 23: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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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년 7월2일 당나라 궁전의 현무문에서 황제 이연의 차남인 이세민(李世民)이 형이자 황태자인 이건성(李建成)과 동생 원길을 죽이고 황위를 차지한 것은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중국사에서 그런 일은 일일이 꼽을 수도 없다.

그것이 새삼 눈길을 끄는 것은 그런 패륜을 저질러 ‘폭군’처럼 등장한 이세민(태종)이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군’으로 꼽히게 돼서다. 그는 청대의 강희제(康熙帝)와 더불어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군으로 꼽히고 있다.

둘 가운데서도 이세민은 중국적인 성씨(李)를 갖고 있어 더 친근한 느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따지고 보면 그들도 선비족 혈통이지만….

현무문 사건은 동기에서나 수법에서나 부도덕하고 음험한 골육상쟁이었다. 이세민이 유능하고 당의 건국과정에서 공을 많이 세운 것은 분명하나 형인 이건성도 나름의 능력과 공헌도 있어 그의 황태자 책봉이 부당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이세민은 부황에게 형이 후궁들을 농락한다고 충동질해 분노한 이연이 건성을 부르도록 한 뒤 현무문에 병력을 잠복시켰다가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렇게 집권했지만 그는 통치를 잘해 그의 연호(貞觀)를 딴 ‘정관의 치’는 마치 중국의 고대 신화시대에 버금하는 태평성세로 자리매김돼 있다.

여기에는 수양제의 공이 크다. 그의 실정 덕에 수나라 중신인 이연은 나라를 가로챌 수 있었고 그의 아들은 명군의 반열에 오르기가 수월해졌다. 태종은 양제의 폭정에 대한 기억이 생생했던 시점에 권좌에 올라서 그의 치적이 더욱 돋보였던 것이다.

여기에다 승자의 기록이라는 면도 있다. 태종은 역사서를 국가적 사업 차원에서 편찬하는 관행을 수립하는 등 사서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그때까지 중국의 역사책은 사마천의 ‘사기’, 반고의 ‘한서’, 진수의 ‘삼국지’ 등이 모두 개인의 연구 작업이었던 것을 이제 국가기관이 제작하게 했다.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약점을 미화하기 위한 행위라는 게 정설이다.

양평(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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