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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세상의 인과를 아는 게 연기법”

입력 : 2019-06-29 01:00:00 수정 : 2019-06-28 20:5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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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물 예외없이 상호의존적 / 연기의 실상 모른 채 각자도생땐 / 당면한 분쟁·윤리문제 풀지 못해 / 진실한 삶은 공생 향한 의식과 실천
신용국, 김영사/2만8000원

인식이란 무엇인가 - 연기법, 세상의 ‘자아 없음’을 말하다/신용국, 김영사/2만8000원

 

‘이것이 일어나니 저것이 일어나고, 저것이 사라지니 이것이 사라진다.’

이 문장은 사회 양극화, 공동체 붕괴, 생태 파괴 등 현대사회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여겨진다. 이 알쏭달쏭한 말은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직후 설파한 ‘연기법(緣起法)’에 대한 설명이다. 모든 사물이 하나의 예외도 없이 상호의존적으로 발생한다는 연기법은 실체론적 사고와 분별의식, 인간중심주의로 점철된 지금 이 시대에 종교 이상의 메시지를 던진다.

붓다가 처음 설파한 이후 이 연기법에 대한 연구는 2600여년 동안 끊임없이 이뤄져왔다. 불교의 학문적 연구와 실천수행에 힘써온 출가 수행자 신용국은 ‘인식이란 무엇인가’에서 그동안 학파에 따라 달리 정의된 연기론을 서로 비교 분석하고, 더 나아가 여러 종교와 철학, 과학을 바탕으로 연기론을 분석했다. 또한 다양하고 철저한 논증을 통해 인식에 대한 개념적 전환을 요구하며, 나아가 공생의 세상을 도모하는 사회적 실천의 길을 제시한다.

 

연기법을 다루는 대부분의 책들이 불교 경전과 교리부터 설명하는데, 이 책은 관습적으로 사용되던 무아(無我) 등 기존 불교 용어들의 의미를 되짚고 다른 용어로 대체함으로써 연기법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시도한다.

붓다가 인도 바르나시에서 수행 중이던 다섯 제자에게 최초의 법을 설파하는 모습.

저자는 연기법을 바르게 아는 것이 ‘나’와 ‘세상’의 인과를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와 세상이 지금 지각한다’가 아닌 ‘나와 세상은 지금 서로 의존하여 형성된다’는 비결정론적 인식이 바로 연기다.

저자는 이 상의상관(相依相關)의 원리를 이해할 때 ‘나는 무엇인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이 물음들에 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붓다는 땅·물·불·바람·태양·달도 없고, 공간도 없고, 식(識)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것(無)도 없는 세계, 즉 연기법계를 ‘괴로움의 종식’이라고 설명한다.

책은 인지생물학, 뇌과학, 양자역학 등의 과학 이론을 연기론과 비교·점검하며 인류의 지성이 결국 연기법과 일맥상통하고 있음을 상세히 밝힌다. 저자는 “정신 실재론자들에게는 뇌가 인식의 주체라는 뇌과학의 주장이 달갑지 않다”며 “그러나 연기론에는 정신도 없고, 물질도 없다. 정신이나 물질의 존재 대신 외부에 연동하는 영역체(무자아)를 실재로 이해하는 연기론은 뇌를 인식 주체로 이해하는 데 아무런 거부감이 없다”고 설명한다. 또 “유기체론과 연기론의 세계관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대상의 관측값은 관측에 의존한다는 양자론의 관점은 현상의 관계의존성을 말하는 연기론과 다르지 않다”며 “세상의 모든 값이 자아 없는(無自我) 관계의존성이기에 세상은 관계의존적으로 예측될 수밖에 없는 비결정론의 세계인 것”이라고 말한다.

“의존적 형성의 세상에서 제각기 살아나갈 방법을 꾀하는 것은 어리석은 망상일 뿐이며, 삶을 진실로 의미 있게 하는 것은 공생을 향한 의식과 실천이다.”

저자의 결론이다. 연기의 실상을 알지 못한 채 각자도생하게 되면 우리가 당면한 분쟁과 윤리의 문제를 풀어낼 길은 묘연하다는 것이다. 존재와 세계의 실상을 밝혀 공존의 상생과 조화를 가르친 연기법이 세상의 법이 될 때, 세상의 모든 문제는 대부분 치유될 수 있음을 밝힌다.

저자는 “연기법의 도 닦음에 대하여 붓다는 자신의 이익과 남의 이익 둘 다를 위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나와 남은 자아상과 세계상의 가명(假名)이니, 붓다의 말씀은 자아상과 세계상의 이익 둘 다를 위한 도 닦음이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아상을 위한 도 닦음은 자신의 탐진치(貪瞋癡) 습성을 청소하는 종교적 수행이지만, 세계상을 위한 도 닦음은 공생의 세상을 도모하는 사회적 실천이다”고 덧붙였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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