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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토리세계] 내전 피해 입국한 500여명 전국에 흩어져
- 난민심사 중요성 커졌지만… 난민찬반갈등 불씨 여전

 

“1년 넘어가니 가장 힘든 건 가족이죠.”

 

지난해부터 예멘 출신 난민신청자들을 지원해온 천주교단체 ‘나오미센터’ 김상훈 사무국장은 19일 현재 제주도에 남아있는 예멘인들의 근황에 대해 이같이 전했다. 그는 “제주도에 남아있는 예멘인들은 광어 양식장, 농사, 말 농장 등 1차 산업에 주로 종사하고 있다”며 “내전 중인 예멘을 떠난 지 1년쯤 지나니 가족과 인터넷으로 연락은 하지만 걱정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나오미센터는 이들이 직장에서 실직하거나 머물 곳이 없을 때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센터가 관리하는 예멘인 중 30% 정도만 영어가 가능해 아랍어 통역을 돕기도 한다. 이들 상당수는 숙식이 가능한 일자리에 취업해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1년 전 제주 온 예멘인들은 지금?

 

지난해 예멘 내전을 피해 500여명의 예멘인이 제주도를 통해 입국했다. 법무부는 이들 중 언론인 출신 2명에 대해 “후티반군 등에 비판적인 기사를 작성, 게시해 납치·살해·협박 등을 당했고 향후에도 박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했다”며 난민을 인정했다. 412명에 대해서는 “난민인정 요건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추방할 경우 예멘의 내전 상황 등으로 인해 생명 또는 신체의 자유 등을 침해당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며 인도적 체류를 허가했다. 인도적 체류허가자는 난민법상 건강보험, 교육 등 혜택을 받지 못하지만 취업과 국내 체류가 가능하다. 두 가지 모두 인정받지 못한 예멘인들은 제주도에 머물며 이의를 제기하고 있거나, 다른 곳으로 떠난 상태다. 제주출입국, 외국인청에 따르면 상당수 인도적 체류허가자는 일자리를 찾아 육지로 떠났고, 제주도에는 100여명의 예멘인이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 중재로 스웨덴에서 정부측과의 평화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13일(현지시간) 옛 수도 사나에서 열린 예멘 반군 집회에서 한 어린이가 총을 잡고 서 있다. AFP연합뉴스

 

제주 외국인청은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아 전국으로 흩어진 예멘인들이 주로 제조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전라도 지역의 한 조선소에는 예멘 출신 100여명이 고용됐다고 한다. 한국어가 서툰 예멘인들이 숙식을 해결하며 일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어나 한국문화 등 이들의 사회적응을 돕는 교육도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법무부는 지난해 제주 예멘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 등 사회통합교육과 멘토링을 통해 정착을 지원했지만 취업으로 참여율이 저조해져 프로그램을 종료한 상태다. 법무부 관계자는 “예멘인들이 제주도에 머문 초기에 한정해 기초 법질서 교육과 멘토링 등을 실시했던 것”이라며 “향후 이들을 상대로 기초 법질서 교육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 난민신청자는 ‘양극화’…가짜난민도 적지 않아

 

최근 난민관련단체 사이에서는 난민신청자가 ‘양극화’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치적, 종교적 박해를 이유로 난민지원단체를 찾는 외국인 수는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경제적 이유로 국내를 찾은 ‘가짜 난민신청자’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난민신청자는 2016년 7542명, 2017년 9942명, 지난해 1만6173명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 난민인권센터가 공개한 난민신청자 국적 자료를 보면 카자흐스탄(2496명), 중국(1200명), 파키스탄(1120명), 이집트(870명), 나이지리아(390명) 등 순이다. 예멘과 달리 절박한 상황이 아닌 나라가 상당수 포함돼 있다.

 

한 난민 거주시설 관계자는 “러시아, 카자흐스탄, 인도, 말레이시아 등 난민신청 이유가 불명확한 외국인들이 늘어난 것 같다”며 “이런 사람들은 주로 일을 하러 왔기 때문에 난민지원시설을 거의 찾지 않는다”고 했다. 가짜난민을 위해 난민신청을 대신해주는 난민브로커도 판치고 있다. 지난 4월 인천지검 외사부는 지난해 10월부터 600여명의 카자흐스탄·러시아·키르기스스탄·필리핀·태국·몽골·베트남 등 국적 외국인에게 허위 난민신청서를 만들어주거나 알선한 난민브로커 20여명을 적발했다.

 

◆ 난민심사 중요성 커졌지만 사회는 여전히 난민찬반

 

‘가짜 난민’과 구제가 필요한 난민을 제대로 가려내는 정확한 심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지난해 제주 예멘 난민사태 이후 난민문제를 둘러싼 찬반 논란에 머물러있다. 지난 3월 인천공항에 체류 중인 앙골라 출신 가족의 난민 심사 관련 재판이 열린 인천지법 앞에서는 또다시 난민 찬반단체의 맞불집회가 열렸다. 지난해 난민법 폐지 국민청원이 70만명의 동의를 받은 뒤 잇따른 난민 혐오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난민인권단체는 제대로 된 난민심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반대단체는 국내 난민법이 가짜난민을 양산하고 있다며 앙골라 가족의 추방을 요구했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지난해 예멘인 500여명이 들어와 극우파들은 ‘쫓아내라’, 다른쪽은 ‘무조건 수용해라’라며 국론이 분열됐는데 이는 난민의 개념이 잘못 잡혀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설 교수는 “난민은 실질적 망명자를 뜻하고 당시 예멘인은 잠시 전쟁을 피해 온 피난민에 해당하는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난민을 피난민과 동일시하고 있다”며 “난민에 권한을 얼마나 줘야하는지와 난민심사 과정의 절차상 문제 등은 찬반이 아닌 다른 측면에서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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