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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공대女는 어디로…美 실리콘밸리 여성 3인이 말하는 ‘유리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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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6-15 17:00:00 수정 : 2019-06-15 10: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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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보고 실리콘밸리의 현재는 / 캘리포니아주 상장 기업 ¼ 가량 여성 이사 無 /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올라갈 수록 '유리천장'…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 / 이수인 에누마 대표 "실리콘밸리서 여성은 아직도 약자… 여성 창업자에 투자한 경우 많지 않아" / 심플스텝스 김도연 대표, 이민 온 '경단녀' 네트워크 만들어 재취업 지원

“미국 정보기술 분야에서 학사 학위를 따는 비율은 남녀가 반반입니다. 하지만 산업 현장의 여성 비율은 훨씬 적습니다.”

 

“여성으로서 위로 올라갈수록 유리 천장이 보입니다. 아래에서는 여성 상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위아래로 눌리니 엄청 힘들죠.”

 

미국 실리콘밸리는 정보기술 기업의 천국이자 기회의 보고로 여겨진다. 창의적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무장한 이들이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은 곳.

 

그러나 실리콘밸리에서도 성공의 단맛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성별에 따라, 인종에 따라 넘어야 할 산은 더 높고 험난해진다. 지난해 10월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법제화한 기업 여성임원 의무화는 이같은 현실을 잘 보여준다. 현재 캘리포니아에 있는 상장 기업의 4분의 1 가량은 여성 이사가 한 명도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캘리포니아주는 이 주에 등록된 상장 기업들이 올해까지 이사회에 최소 1명의 여성 이사를 두도록 했다. 또 2021년까지 이사회 의석 수에 따라 최대 3명의 여성 이사를 선임하도록 했다. 위반할 경우 10만달러(약 1억18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이 법에 반발해 소송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그만큼 이공계 여성 인력들이 갈 길이 먼 상황이다. 주한미국대사관 초청으로 실리콘밸리에서 주목받는 여성 창업자 세 명을 만나 미국 정보기술 산업에서 여성의 현주소를 들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이공계 여성이 적은 이유는 도전정신이 많아서”

 

미국의 경우 고교·대학 시절만 해도 이공계 남녀 비율이 엇비슷하다.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 전공 여대생 수는 오히려 남성을 앞지른다. 각종 대회에서도 여학생이 두각을 나타낸다.

 

그러나 산업 현장으로 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스타트업 인스트루멘탈의 안나 카트리나 쉘레츠키 CEO 겸 창업자는 “테크 분야의 22∼25%만이 여성”이라고 말했다. 최근 인스트루멘탈 사무실에서 만난 쉘레츠키 대표는 “스타트업은 성별 불균형이 가장 심각한 분야”라며 “미국 벤처 캐피털의 2%만이 저같은 여성 창업자의 스타트업으로 흘러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그 많던 이공계 여대생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스탠포드대학교는 이같은 현상을 20∼30년간 추적 조사하고 있다. 쉘레츠키 대표는 “스탠포드대의 초반 조사 결과를 보니 여성들의 이공계 진출이 적은 이유는 일·가정 양립 같은 통념과 달랐다”며 “우선 여성들이 도전적인 일을 하고 싶어하다보니 일이 너무 쉬우면 업계를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유독성 기업 문화도 문제”라며 “자기 이야기를 회사가 들어주지 않거나 특정 직원에 특혜를 주며 불공평하게 대우하는 식으로 직원을 몰아내는 기업 문화가 있을 때 과감히 떠나는 비율이 여성이 더 많았다”고 밝혔다. 

 

쉘레츠키 대표는 스탠포드 대에서 기계공학 학·석사를 딴 후 애플에서 제품 디자인 엔지니어로 6년간 일했다. 세 종류의 아이팟 모델, 애플워치 시리즈1 제작에 참여했다. 이후 애플을 떠나 소비자가전 조립라인의 이상 징후를 찾아주는 데이터기업 인스트루멘탈을 창업했다. ‘우먼 인 스템 멘토십 프로그램(Women in STEM Mentorship Program·WISMP)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정보기술 분야에서 일하는 여성 한 명과 이 분야 진출을 희망하는 여학생을 멘토·멘티로 이어주는 프로그램이다. 

 

“2013년 애플에서 일할 때, 저희 팀원 70명 중 단 두 명만 여성이었어요. 처음엔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 했죠. 오히려 남성 직원과 함께할 수 있어서 좋다고 여겼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팀이 성별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하다가 상사를 찾아가서 ‘보조금을 주면 애플에 더 많은 여대생 인턴을 모아오겠다’고 얘기했어요. 이 프로그램이 확대돼 지금 모습이 됐죠. 현재는 100명의 여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위에는 유리 천장, 아래에서는 여성 지도자 인정 안 해”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뇌 신호 측정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연구자다. 서울과학고·서울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스탠퍼드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뇌 의학으로 연구 분야를 넓혔다. 한국인 최초로 스탠퍼드 의과대학·공과대학 교수가 된 그는 2015년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에서 스타트업 엘비스(LVIS)를 창업했다. 올해 케이비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168억원도 투자받았다.

 

그가 세운 엘비스의 목표는 흥미롭다. 기계의 오작동을 찾아내듯 뇌 회로의 문제점을 파악해 뇌질환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 교수는 “휴대전화가 고장 나 서비스센터에 가져갔는데 기술자가 자판만 눌러보고 ‘잘 모르겠는데요’ 하는 게 현재 뇌 질환 의료 상태”라며 “저희는 ‘이 환자는 뇌의 무엇이 잘못돼서 팔을 떨고 있구나’하고 전자적으로 진단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뇌전증의 종류를 진단하는 기술을 미국에서 임상 실험 중이다. 그의 다음 목표는 치매와 파킨슨병 정복이다. 

 

대학 때 검사한 지능지수 157에 화려한 경력을 쌓아온 천재형 연구자인 그이지만 여성으로서는 “지금도 어려운 점이 많다”고 했다. 최근 스탠퍼드대에서 만난 이 교수는 “어릴 때는 제가 소수자여서 힘들었는데 (이제)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유리 천장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 사회가) 차별을 안 하는 것 같지만 엄청나게 차별해요. 위에서 차별하고, 아래에서는 여성 지도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게 많아요. 위아래로 눌려서 엄청 힘들어요. 위로부터 차별은 저 스스로 열심히 해서 극복하려 해요. 아래에서의 차별을 막으려면 사회적으로 여성 지도자를 받아들이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연구실의 경우 (남성 연구원이) ‘나는 여성 지도자 밑에서 편하게 있으련다, 내가 도미네이트하면서’ 이런 개념을 가진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런 일이 생기면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하게 돼요. 그런데 (이 연구원들이) 예를 들어 백인 남성에게는 그렇게 대하지 않더라고요. (이를 해결하려면) 한편으로는 교육이 필요하고, 내가 리더로서의 모습을 어느 정도 보여줘야 할 것 같아요.”

 

이 교수는 “제가 성공하기까지 여성이기에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던 만큼 괴롭힌 사람도 많았다”며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나가야겠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포기하지 않는 것 밖에 없다. 제가 포기를 잘 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하기로 한 건 끝까지 잘한다”고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여성이 사회에서 일하는 데 있어서 포기하지 않는 게 되게 중요한 거 같아요. 포기하라는 압력이 너무 많이 들어오거든요. 미국이라고 한국보다 덜하진 않아요.”

 

학계 차별을 해결하기 위해 그는 멘토십이 중요하다고 했다. 내가 당하는 차별은 다른 이들이 똑같이 겪었거나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당한 부당한 일들 역시 남성 교수에게는 금시초문이었지만 여성 교수들에게는 공감을 샀다. 

 

그는 미국 이공계 분야 여성이 적은 데 대해서는 “뇌과학자로서 보기에는 처음부터 사기를 꺾는 일이 많은 것 같다”며 “뇌는 유연하기에 어떻게 개발하느냐에 따라 (결과 차이가) 큰데 어릴 때부터 환경적으로 한 방향으로 압력을 주면 공학에 적절한 여성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바라봤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밴처캐피털, 여성 창업자에 투자한 경우 많지 않아”

 

지난 5월 미국 LA 플레이야비스타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모터스 CEO가 봉투를 열었다. 그의 손을 지켜보는 이들은 조마조마했다. 문맹 퇴치라는 원대한 꿈을 내건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의 5년간의 대장정을 끝맺을 최종 우승자가 발표되는 순간이었다. 결과는 공동 우승. 이수인·이건호 부부가 실리콘밸리에서 만든 교육 스타트업 에누마가 영국 비영리단체 원빌리언과 함께 영광을 거머쥐었다. 우승 상금은 각각 500만 달러였다.

 

수상의 기쁨이 채 가시지 않은 6월 초 에누마 이수인 대표를 버클리에 있는 사무소에서 만났다. 그가 엑스프라이즈에 내놓은 제품은 글이라고는 배워본 적도 없는 아이들을 위한 학습 애플리케이션 ‘킷킷스쿨(KitKit School)’이었다.

 

문맹 퇴치를 주제로 한 엑스프라이즈에는 전세계에서 198개 팀이 도전했다. 이 중 5개 팀이 최종 결선에 올랐다. 필드테스트는 2017년 12월부터 15개월간 아프리카 탄자니아 남쪽 음투와라 지역에서 진행됐다. 170개 마을에서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7~10세 아이들을 다섯 그룹으로 나누고, 5개 팀의 학습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게 했다. 이 중 아이들에게서 가장 뛰어난 성취를 이끌어낸 팀이 우승을 차지했다. 

 

킷킷스쿨은 글자와 숫자를 모르는 아이들이 선 긋기, 퍼즐 만들기 등을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초등학교 2학년 수준의 수리·문해력을 습득하도록 하는 앱이다. 불운한 환경이나 타고난 두뇌와 상관 없이 배움에 뒤쳐지는 아이들이 없도록 하자는 게 이들의 목표다. 에누마는 이런 사명감에서 2014년 토도수학을 내놓아 이미 시장에서 성공하기도 했다.

 

이수인 대표에게 실리콘밸리는 기회의 땅이었다. 서울대 미대를 나와 미국에 연고가 없고 영어 실력도 그닥인 동양 여성에게 실리콘밸리는 날개를 달아줬다. 그는 “실리콘밸리는 물건이 좋으면 그 사람 너머에 있는 걸 봐주려는 곳이라 회사를 차릴 수 있었다”며 “저는 실리콘밸리에서 사업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제 투자자가 저를 가르쳐줬어요. 그 분이 실리콘밸리에서 사업해야 하는 이유로 두 가지를 들더라고요. ‘실리콘밸리에 온 건 네 운명이다. 네가 성공하고 싶으면 도와줄 사람들을 여기에서 가장 많이 만날 수 있고, 만약 성공하게 된다면 (지구상 어디보다) 여기에서 가장 큰 성공을 할 수 있다’고.”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실리콘밸리는 한편으로는 절로 욕이 나오게 만들만한 냉혹함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대표는 이민자를 향한 포용성과 관대함을 주로 접해왔다. 이런 그도 “젠더 문제에 있어서는 미국이 선구적인 부분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유니콘급(기업가치 1조원 이상) 여성 실리콘밸리 투자자가 5, 6명 돼요. 이들이 실리콘밸리 파워우먼들에게 힘을 주기 위한 조직을 6, 7년 전쯤 만들었는데 여전히 엄청 작은 조직이에요. 실리콘밸리 여성의 17%는 펀드레이징 과정에서 불필요한 성적 접촉을 시도 당한다고 해요.”

 

그는 세계 비영리 혁신가들을 지원하는 ‘아쇼카’의 펠로로 선정된 한 여성 기업인을 예로 들었다. 이 기업인은 학내 성폭력 해결을 위한 앱을 만들었다. 학내 성추행을 신고하면 같은 건으로 신고한 이들을 연결해 힘을 모으도록 하는 앱이다. 그가 실리콘밸리에서 이 앱을 피칭할 기회가 생겼다. 앱 소개가 끝나자 청중 한 명이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랑 데이트할 생각 있어요?’

 

“굉장히 많은 여성 창업자가 (투자자 모집을) 하다가 말아요. (투자자들이) ‘나랑 데이트 할래, 집에 와서 피칭할래, 어디 놀러가자’ 해요. 실리콘밸리에서 여성은 아직도 너무나 약자에요. 여성들이 밴처캐피털에 많이 들어가는데 위에는 거의 없어요. 아래에서 애널리스트로 쓰이다가 버려지죠. 저도 투자자들에게 물어보면 여성창업자에게 투자한 경우 많지 않더라고요. 미국이든 한국이든.”

 

실리콘밸리에서 한국인 여성 창업자는 소수다. 사실 한국인 창업자조차 드물다. 이 대표는 “한국 여성은 상당수가 남편이 (미국으로) 이직하면서 함께 오다보니 취업 비자가 안 나와 최소 5년간 경력 단절을 겪는다”며 “미국에 올 정도인 엔지니어, 의사라면 부인도 고학력인데 경력단절 후 제대로 된 일자리로 돌아오기가 불가능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이같은 이민 여성의 경력 단절을 해결하기 위한 비영리기업으로 김도연씨가 세운 심플스텝스가 있다. 김 대표는 경력 단절 이민 여성과 실리콘밸리 기업들을 연결해 재취업을 돕고 있다. 현재는 주로 한국인 여성들이 참여하고 있다. 현재까지 250명의 구직자를 모았고, 25건의 취업 성공 사례가 나올 만큼 심플스텝스의 활동 결과는 고무적이다. 

 

미국 팔로알토·버클리=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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