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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中 ‘항인치항’ 약속 휴지조각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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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6-12 23:52:17 수정 : 2019-06-12 23:5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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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위에도… ‘범죄인 인도법안’ 처리 확실시

“홍콩에는 인터넷 우회접속 프로그램(VPN)이 필요 없다.” 베이징에 사는 한 지인이 홍콩을 다녀온 뒤 만나서 건넨 첫 말이다. 중국과는 너무나 다른 홍콩만의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2년 전인 2017년 6월 ‘홍콩 주권반환 20년’ 기획취재차 찾았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서 펼쳐졌다. 홍콩 특유의 부산스럽고, 시끄럽고, 유쾌했던 풍경이 기억에 선하다. 숙소에 앉아 노트북을 할 때 VPN이 없어도 구글이 접속된다는 사실에 놀랐다. 수백명의 젊은이가 밤새 도시 거리를 무리지어 다닐 수 있다는 사실에 또 놀랐다.

이우승 베이징 특파원

“이곳이 중국인가?” 좁게 이어진 골목을 날카로운 경적과 함께 쉴새 없이 지나가는 자동차에 여러 차례 가슴을 쓸어내렸다. 도심의 대중식당은 보통 큰 홀 하나에 수십 개 테이블이 붙어 있다. 조용하고 사적인 대화는 불가능하다. 목소리를 높일 만큼 높여도 옆 사람과 대화가 어렵다. 홍콩의 부산함 속에는 분명 자유롭고 유쾌한 감정이 담겨 있다. 언론·출판·집회의 자유가 보장되는 자유로운 사회 시스템과 홍콩 특유의 역사가 녹아든 홍콩만의 분위기인 셈이다.

2017년 7월 1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홍콩을 찾았다. 홍콩 주권반환 20년 축하행사 참석을 위해서였다. 중국은 당시 ‘홍콩 띄우기’에 적극적이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는 “일국양제(一國兩制)를 통해 홍콩이 경제발전과 민주 및 사회 발전을 함께 이룩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거리에서 만난 홍콩인은 중국의 ‘홍콩선전’에 불편해했다. 홍콩인의 반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들은 “우리는 중국과 같이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1997년 7월 1일 홍콩 주권이 중국으로 반환됐다. 당시 중국 정부는 2047년까지 50년 동안 ‘항인치항’(港人治港·홍콩인이 홍콩을 다스린다)의 원칙으로 홍콩에 대한 고도 자치를 보장한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이제 휴지조각으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아무도 그 약속을 믿지 않는다. ‘우산혁명’ 이후 홍콩이 또다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범죄인에 대한 중국 본토 소환을 가능하게 하는 범죄인 인도 법안 추진을 반대하는 홍콩인들이 연일 반대시위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일 100만명이 넘은 홍콩인이 거리로 나왔다. 홍콩 시민 7명 중 1명이 시위에 참여한 셈이다. 2차 심의를 시작하는 12일은 이른 아침부터 수천명의 시민이 시위에 합류했다. 50여곳의 복지기관과 종교기관 종사자 2000여명이 참여하고, 학생과 노동자도 ‘휴업’과 ‘파업’을 결의하며 항의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홍콩의 분노는 주권반환 이후 민주화 수준은 낮아지고, 대규모 중국인 이주로 부동산 가격의 폭등과 취업난 가중이라는 현실적인 불만이 자리 잡고 있다. 홍콩 주권 반환 이후 150만명이 넘는 본토인들이 홍콩에 왔다는 통계도 있다. 한 홍콩인은 “푸통화(普通話)를 하지 못하면 취직이 어렵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화’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실례로 홍콩 입법회만 해도 친중 인사가 다수다. 법안 처리는 확실시된다. 범죄인 인도법안이 통과되면 홍콩 민주화 지수는 또 한 차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1840년 아편전쟁 전 홍콩은 중국 대륙 한쪽 끝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했다. 대영제국의 식민지를 거치고, 미·소 냉전 당시에는 자유민주 진영의 전초기지이기도 했다. 지금은 초강대국 미국의 지위를 위협하는 중국의 통치 아래 있다. 근대사의 급격한 흐름 앞에서 스스로 미래를 개척할 수 없었던 홍콩인들의 아픔이 느껴져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이우승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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