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 취약계층 지원에 800만달러(약 94억원)를 무상 공여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문재인정부의 첫 대규모 대북 지원을 계기로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올지 관심이 쏠린다.
통일부는 5일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교추협)를 열고 세계식량계획(WFP)과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을 통해 북한에 800만달러를 지원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지난해 11월 북한에 전달한 소나무재선충병 방제약제 50을 제외하면 이번 정부의 첫 인도적 대북 지원이다.
정부는 WFP를 통해 북한 9개도 60개군 탁아소와 고아원, 소아병동 등 영유아, 임산부를 대상으로 영양강화식품 배급을 위해 450만달러(약 53억원)를 지원한다. 유니세프를 통해서는 북한 아동·임산부 대상 의약품과 미량영양소복합제 공급에 350만달러(약 41억원)가 지급된다. 정부는 앞서 지난달 29일부터 12개 부처 차관급 공무원과 민간 전문가 5명으로 구성된 교추협 위원들에게 서면으로 의견을 받는 심의과정을 거쳤다.

이번 북한 취약계층 지원사업은 2017년 9월 교추협에서 이미 결정됐던 사안이지만 당시 실제 예산 집행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다음주 내로 예산 집행을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전날 “국제기구에 집행 결정 사실을 통보하고 필요한 계좌를 수령해 입금하게 된다”며 “통상 3∼4일(업무일 기준) 걸리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정부가 남북협력기금에서 국제기구 계좌로 입금하면 해당 기구에서 자체 구매절차를 거쳐 물품을 사들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국제기구의 행정비용은 총예산의 6.5% 수준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3일 WFP와 식량농업기구(FAO)는 북한 식량 긴급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북한 주민의 40%인 1010만명이 식량위기에 처했으며 올해 136만t의 식량이 부족하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청와대는 2주 뒤인 17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를 열고 800만달러 지원을 결정했다.

한·미 외교 당국자가 최근 협의하는 과정에서도 대북 식량 지원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렬 외교부 평화외교기획단장은 전날 서울 종로구 도렴동 청사에서 알렉스 웡 미 국무부 부차관보와 남북협력상황 등에 대해 전반적으로 협의하는 과정에서 대북 인도적 식량 지원에 관해서도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대북 식량 지원 관련 여론수렴 절차를 진행하면서 구체적인 시기·규모·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식량 지원은 정상 간 합의된 사항이기 때문에 구체적 절차에 대해 미국과 협상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게 정부의 기본 입장이다.
한편 이날 결정된 국제기구를 통한 800만달러 대북 지원과 별개로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은 지난달 31일 판문점 남측지역 자유의 집에서 열린 최고위원 회의에서 “다음주 정부는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에) 5만t의 식량 지원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통일부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바 없다”고 했다.
조병욱·홍주형 기자 brightw@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