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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의세상보기] 30대 ‘괜찮은 여성’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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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5-27 21:20:27 수정 : 2019-05-27 21: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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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 생애주기서 우선순위 변화 / 20대 결혼보다 커리어에 투자 / 30대 때 배우자 선택 어려움 / 평생 반려자 찾는 과정도 중요

지난주 모처럼 제자들과 함께 서울숲을 산책할 기회가 있었다. 숲 속을 거닐자니, 평일 저녁을 이용해 세 쌍의 커플이 야외웨딩 촬영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문득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도 얼마 안 남았는데 예전에 비해 청첩장 날아드는 빈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웨딩 촬영에 한창인 커플을 향해 “요즘 같은 시대 결혼을 결심하다니 참으로 용기 있는 사람 같아요” 무심코 던진 제자의 말에, “그러게 말이야” 맞장구를 치기까지 했다.

순간 결혼시장에서 진행 중인 미묘한 트렌드를 재치있게 포착한 바버라 화이트헤드의 책 ‘괜찮은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가 우리네에게도 그럴듯하게 적용될 것 같다는 심증이 굳어졌다. 저자에 따르면 “여성들의 평균 초혼연령이 높아졌다는 것은 단순히 만혼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넘어, 여성의 생애주기에 의미심장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요, 나아가 배우자를 선택하는 관행과 사회적 각본 또한 바뀌었음을 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30대에 접어들면서 결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의 의미는 이제 여성의 생애주기에서 우선순위가 조정됐음을 뜻한다. 23~24세에 결혼하던 시절의 여성은 일단 대학 졸업과 더불어 결혼에 골인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반면 서른을 훌쩍 넘겨 결혼하게 된 여성은 20대 중·후반을 자신의 커리어를 다지는 데 투자한다. 필요하다면 석·박사 학위에 도전하기도 하고 각종 자격증을 따는 데 매진하기도 하며, 오지 탐험이나 자신만의 취미생활을 하며 후회 없는 젊음을 만끽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데 20대를 결혼보다 커리어에 투자하는 패기 넘치는 여성들이 자신은 결코 의도한 적이 없었건만, ‘괜찮은 남자’를 놓쳐버리고 마는 함정에 빠지고 있다는 것이 화이트헤드의 예리한 지적이다. 여기서 ‘괜찮은 남자’라 함은 자신이 진정 결혼하고픈 남자 정도로 해석하면 충분할 것 같다. 하나의 함정은 자신의 경력 개발을 위해서라면 정보 수집과 역량 개발에 열과 성을 다했던 스마트한 여성들이, 결혼에 관한 한은 의외로 ‘낭만적 사랑’의 신화에 갇힌 채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 상대는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언젠가 인연이 닿으면 만나게 될 것이라는 환상도 모자라, 심지어는 저 모퉁이를 돌면 내 인생의 반려가 될 그 남자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환각까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나이브(천진난만)한 인식을 하고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덕분에 커리어에 집중하느라 서른을 가볍게 넘긴 후 ‘나도 결혼이라는 걸 해볼까’라며 결혼시장에 발을 내딛는 순간, ‘괜찮은 남자들’은 이미 20대 여성과 결혼해 버렸음은 물론 자신의 ‘멋진 커리어’가 결혼시장에서 반드시 매력적인 조건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함정은 여성의 만혼화와 더불어 결혼으로 가는 길의 사회적 각본이 변화됐음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요즘 대학가에서는 과거처럼 배우자 선택을 염두에 두고 데이팅을 하는 선남선녀의 숫자는 매우 희소해졌다. 과거 대학 캠퍼스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데이팅은, 결혼 적령기를 앞둔 상태에서 사회경제적 배경 및 규범을 공유한 남녀가 캠퍼스라는 좁은 공간에 모여 있음으로써 짝짓기에 매우 우호적 환경이 조성돼 있었다는 특징이 있다. 덧붙여 배우자 선택 룰이 비교적 정교하게 발달돼 일상적 만남을 거쳐 스테디 관계를 지나 결혼을 약속하는 약혼단계 후 결혼에 골인하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결혼시장은 대학 캠퍼스 같은 동질적 분위기를 기대하기 어려움은 물론 배우자 선택 룰이나 의례도 개인의 순발력에 맡겨짐으로써 특별히 여성 입장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선택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창창한 커리어가 기다리고 있는 여성이 배우자 선택에 각별한 관심을 갖는 경우, 커리어와 배우자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욕심 많은 여성으로 간주됨으로써 여성 스스로 움츠러들게 되는 경우도 다반사라 한다. 혼전 동거를 결혼으로 가는 길의 정류장 정도로 생각하는 미국 여성 중에는 30대 초반에 동거를 선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이들 대부분은 결혼으로 진입하는 대신 ‘상대가 결혼 준비가 안 돼 있음을 발견하는 데’ 귀한 시간을 허비하고 만다는 것이다.

이제 30대 이후 결혼을 준비 중인 여성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작동해 왔던 결혼시장 규범이 새로운 방식으로 바뀌고 있음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것이 화이트헤드의 진심 어린 충고이다. 평생의 반려자를 찾는 과정 또한 커리어 개발 못지않게 중요한 만큼, 이를 위한 준비도 우연이나 운명에 맡기기보다는 커리어를 개발하듯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함을 환기시켜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저출산의 주범이 결혼율 감소라는 사실이 명확해짐에 따라 ‘혼활’(婚活, 결혼을 위한 활동)이 사회 전반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했음은 우리에게도 일정 부분 시사하는 바가 있다. 평생 결혼하지 않겠노라는 선택도 존중받아 마땅하겠지만, 굳이 결혼하지 않겠다는 마음은 없었으나 상황적 요인에 의해 결혼을 못하게 되는 경우에 대한 대비책 마련을 시작해야 하리란 생각이다. 30대 이후 결혼이 규범화되는 상황에서 생물학적 시계가 재깍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불안 초조해하거나 지레 좌절하지 않도록 말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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