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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신랄한 풍자가"… 봉준호, 세계를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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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5-26 14:28:09 수정 : 2019-05-26 16: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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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박근혜정부, 정권 비판적인 문화예술인 지원 배제 / 봉준호·이창동·박찬욱 등 영화감독 52명 블랙리스트 올라 / 2016년 탄핵으로 朴정권 무너진 뒤 창작의 자유 '급물살' / 블랙리스트 주도자 감옥으로… 文 "국민에 의미있는 선물"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25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칸(프랑스)=AP연합뉴스

박근혜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지원배제명단)에 올라 정권 차원의 ‘감시’를 당한 봉준호(50·사진) 감독이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황금종려상은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칸영화제의 ‘대상’에 해당한다. 정권교체 후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자유로운 창작활동이 보장되면서 값진 성과를 일궈냈다는 점에서 특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

 

◆봉준호·이창동·박찬욱 등 영화감독 52명 블랙리스트 올라

 

봉 감독의 수상 소식이 전해진 26일 영화계에 따르면 박근혜정부 시절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 문체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은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창작 보조금 지원 등 각종 지원 대상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지원배제명단’을 뜻하는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이다.

 

봉 감독을 비롯해 이창동, 박찬욱 감독 등 영화감독 52명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봉준호 감독(왼쪽 2번째) 등 영화 ‘기생충’ 제작진과 출연진이 지난 21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시사회가 열리기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칸(프랑스)=뉴시스

블랙리스트는 박근혜정부 때 처음 생긴 게 아니고 전임자인 이명박(MB)정부 시절부터 만들어져 관리돼왔다는 것이 정설로 통한다. 당시 국가정보원은 봉 감독 등을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로 규정해 퇴출 활동을 계획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외신 가운데 프랑스 AFP통신은 봉 감독의 수상 직후 타전한 기사에서 그를 “한국의 신랄한 풍자가”라고 규정한 뒤 “연세대 사회학과 재학 당시 민주화 운동에 나섰다가 체포됐고, 박근혜정부 때는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소개했다.

 

사실 봉 감독과 블랙리스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외신의 주목 대상이었다. 2017년 1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주도한 혐의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이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구속됐을 때 미국 언론 버라이어티는 “박근혜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정부 지원에서 배제할 목적으로 작성한 블랙리스트에 ‘아가씨’의 박찬욱 감독, ‘설국열차’ 봉준호 감독, ‘밀정’에 출연한 배우 송강호 등 9000여명이 포함됐다”고 보도하며 충격을 표한 바 있다.

 

박근혜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2017년 1월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구속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왼쪽)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세계일보 자료사진

◆블랙리스트 주도자 감옥으로… 文 "국민에 의미있는 선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회 탄핵소추와 헌법재판소 파면 결정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뒤 치러진 대선에 출마한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민주주의 근간을 유린한 국가폭력”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대통령에 당선되면 책임을 물어 같은 범죄가 되풀이되지 않겠다”고 공약했다.

 

이에 따라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7월 도종환 당시 문제부 장관이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진상조사위는 총 131명이 블랙리스트에 연루된 것으로 파악했다. 가담 정도에 따라 일부는 검찰 수사에 넘겨지고 일부는 징계 조치가 취해졌다.

 

책임이 중한 인물들은 문재인정부 출범 이전 특검 수사 단계에서 이미 형사처벌을 받았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 외에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김소영 전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이 줄줄이 구속되거나 기소돼 법정에 섰다.

 

이번 봉 감독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석권 쾌거는 이명박·박근혜정권을 거치며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어둡고 침울한 암운이 드리워졌던 우리 문화예술계가 오랜 자정 끝에 이를 딛고 완연히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음을 상징하는 일대 사건이란 평가가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그동안 우리 영화를 키워 온 모든 영화인과 수준 높은 관객으로 영화를 사랑해 온 우리 국민들에게 의미있는 선물”이라고 봉 감독을 치하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한국 영화 최고의 영예다. 축하드린다”고 밝혔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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