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용화장실요? 웬만하면 안 가죠. 무서운 것 보다 서로 민망한 적 많았던 것 같아요. 말하기는 힘들지만, 공감하시는 분들 많을 텐데….”(여성 A씨)
“공용화장실 뿐만 아니라 일반 화장실 갈 때도 체크 하고 갑니다. 여기가 여성화장실 인지 아닌지, 밖에서 몇 번 보는 버릇이 생겼어요. 실수로 잘못 들어가면 오해도 사고 자칫 성 범죄자로 낙인 찍힐 수도 있잖아요.”(남성 B씨)
지난 24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 한 프렌차이즈 남녀공용화장실. 한 남성이 남녀공용화장실 입구 벽에 붙은 표지판을 보고 몇 번을 두리 번 거리더니 화장실 내부로 들어갔다. 화장실에는 여성용 칸 두 개와 남성용 칸 한 개 그리고 남성용 소변기가 설치 돼 있었다. 이 남성은 여성용 칸이 비워 있는 것을 확인한 후 소변기 앞에서 재빨리 볼일을 보고 손을 씻지도 않은 채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서울시청 인근 한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 지모(42·남)씨 “공용화장실은 남녀 모두 민망 할 것 같은데요”라며 “가끔 여성분들과 마주친 적이 있는데, 그때 마다 왠지 민망하기도 하고 죄책감이라고 할까? 그냥 고개를 숙이게 되더라고요” 라며 말했다.
함께 있던 직장인 이모(39·남)씨는 “용변을 볼 때 여성이 불쑥 들어 온 적이 있어요. 그땐 정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죠. 그 분 잘못 아니죠. 그렇다고 제 잘 못도 아니고, 하루 종일 머리속에서 그 장면이 맴돌더라고요”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다른 곳도 비슷했다. 종로 5가역 인근 한 프렌차이즈 남녀공용화장실. 내부를 살펴보았다. 성인 키만한 칸막이가 여성용과 남성용 구분 짓고 있었다. 아슬아슬한 칸막이는 문을 열고 닫을 때 마다 칸막이 전체가 흔들렸다. 심지어 ‘부스럭’거리는 움직이는 소리까지 들렸다.
표시는 남녀공용화장실이만 여성이 화장실을 이용하면 남성이 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여성이 화장실에서 나오면 들어가고 있었다. 좁은 화장실 구조에 칸막이조차 불안한 해 남녀 동시에 화장실을 이용하기 어려워 보였다.
짧은 시간 이였지만, 화장실 문 앞에는 줄이 늘어져 있었다. 화장실 문 앞에는 여성 줄과 남성 줄이 나눠져 있었고, 일부 여성들은 민망한 듯 스마트 폰만 보고 있었다. 한 남성은 긴 줄을 보더니 화장실 이용을 포기 한 듯 다시 돌아갔다.

카페에 찾은 김모(34·여)씨는 “오픈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잘 가지 않아요”라며 “눈치도 봐요 하고 여로모로 불편하죠”라고 짧게 답했다.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 3년이 지났지만, 남녀공용화장실 문제는 해결 되고 있지 않고 있다. 화장실을 이용하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또한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 최근 5년간 공중화장실 성범죄 1만1000여건 발생
2016년 5월 17일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400m가량 떨어진 3층짜리 한 건물 내부 남녀공용화장실에서 일면식도 없는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한 20대 여성이 무참히 살해됐다.
범인은 경찰에서 “여성에게 무시를 당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그는 법정에서도 같은 진술을 반복했다. 그는 대법원에서 징역 30년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이 사회에 미친 파장은 컸다.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여성의 안전에 관심이 높아졌다.

2013년 이후 공중화장실에서 강제추행이나 몰래카메라 촬영, 절도 등의 범죄가 1만1178건이나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공용시설은 여전히 화장실을 남녀가 함께 쓰도록 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주승용 국회부의장(바른미래당)은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최근 5년간 범죄유형별 공중화장실 범죄 발생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따르면 강간, 강제추행 등 성 관련 강력범죄는 916건, 절도범죄 2952건, 폭력범죄 1492건, 지능범죄 1576건, 공연음란이나 몰래카메라 촬영 등 기타 범죄 4242건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중화장실에서 발생한 위험을 외부에 알리는 비상벨 설치 사례가 늘고 있지만 228개 지방자치단체 중 근거 조례를 마련한 곳은 35곳 뿐. 그나마 설치된 비상벨의 사후 관리가 미흡한 경우가 많다.
현행법(공중화장실 등의 이용에 관한 법률)에는 공중화장실 및 개방화장실 등의 설치 기준과 지방자치단체의 관리 의무 규정이 있지만, 범죄 예방 관련 규정은 없는 실정이다.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 이후 해당 화장실은 분리했다. 입구부터 CCTV가 설치 돼 있고, 안에는 비상벨이 설치돼 구청으로부터 여성 안심화장실 인증도 받았다.
행안부는 시민 불편을 줄이고 화장실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공중화장실법을 개정했다. 이 개정법률에 따라 규모 2000㎡ 이상인 근린생활시설은 남녀 화장실을 따로 설치해야 하는 등 남녀 화장실 설치 범위가 확대됐다.

하지만, 2000㎡ 면적 이하 소규모 민간 건물의 경우 남녀 화장실을 분리해 설치하도록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다. 남녀공용화장실은 남녀 모두 불안과 불편한 장소로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전문가의 따르면 “공용화장실이 남녀 모두 불편할 뿐만 아니라 성범죄의 사각지대로 악용 될 수 있다”며 “근본적인 문제 해결 위해 인식 개선과 현실에 맞는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글·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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