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발 770m 미시령. 여기에는 자동기상관측장비(AWS)가 솟대처럼 삐죽 솟아있다. 이 AWS를 경계로 한쪽은 영서(인제군), 다른 한쪽은 영동(고성군)이다. 영서쪽은 브이(V)자 깊은 골이 파인 계곡이고, 영동으로는 스키 슬로프 같은 산사면이 이어진다. 바람길이 서∼동으로 뚫린 이곳 미시령 AWS 꼭대기에 달린 풍속계는 쉴 새 없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지난 17일 오전 이곳을 찾았을 때도 초속 7m 넘는 바람이 산등성을 훑고 넘어갔다. 봄에는 바로 여기서 ‘양간지풍’이 시작된다. 가뜩이나 바람 잦을 날 없는 이곳에 남쪽으로 고기압, 북쪽으로 저기압이 놓이게 되면 두 기압이 서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면서 강한 서풍을 만들어 낸다. 지난달 4일 고성·속초에 산불이 났을 때도 미시령에는 초속 22.3m의 태풍급 바람이 불었다.

양간지풍은 조선시대 문헌에도 나오는 자연현상이지만, 최근 들어 갈수록 독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양간지풍 발원지 격인 미시령과 양양·영덕의 경우 최근 10년간 3∼5월 월평균 최대 순간풍속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양양·영덕 지점은 최대 순간풍속이 매년 초속 0.3∼0.5m 빨라지는 추세다. 초속 20m가 넘는 강풍 발생 빈도도 비슷하거나 늘어나고 있다.
김백조 국립기상과학원 재해기상연구센터장은 “봄철 바람 약화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보고되는 현상인데, 산불 위험지역에서는 오히려 전보다 강풍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강한 바람은 불꽃을 이곳저곳 실어나르며 작은 불씨를 삽시간에 화마로 키운다. 이런 유별난 기상 특성 때문에 강릉에는 2010년 재해기상연구센터가, 지난해에는 동해안산불방지센터가 개소했다. 동해안 산불방지센터는 전국 최초의 산불 협업 조직이다.
재해기상연구센터는 ‘무브’(MOVE)라 이름 지은 이동식 기상관측차량 4대를 운용하고 있는데, 이번 고성·속초 산불 현장에는 2대의 무브가 8명의 기상연구원과 함께 파견돼 30분 단위로 관측자료를 제공했다. 이 관측자료는 동해안산불방지센터로 실시간 전송돼 산불 확산을 예측하고 진화 전략을 세우는 데 쓰였다. 나득균 강원지방기상청장은 “이번 산불을 겪으면서 융합 재난대응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며 “기상정보를 신속하게 파악하고, 대응전략을 마련할 수 있는 인력이 상시 있어야 한다는 점을 뼈저리게 경험했다”고 말했다.
강릉=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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