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웹툰 속 ‘극단적 선택’ 표현…네이버·다음 등 '웹툰 등급제' 시행 예정

입력 : 2019-05-14 03:00:00 수정 : 2019-05-13 15:54:07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1. “한 발자국이야. 이제 다 끝나.” 네이버 웹툰 ‘복학왕’의 한 장면이다. 주식 투자에 실패한 주인공이 한강 다리 난간에 올라 극단적 선택을 고민한다.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주저하는 주인공에게 허상의 인물들이 말한다. “무서워하지 마세요. 죽음보다 더 무서운 건 이 지긋지긋한 세상이니까요.” 

 

#2. 타임리프(시간여행)를 소재로 그린 다음 웹툰 ‘죽어도 좋아’에서는 죽음이 시간을 되돌리는 수단으로 등장한다. 주인공은 시간을 되돌리기 위해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감행하는데, “죽는 건 그냥 질 나쁜 꿈 꾸는 것 같아서 할만해”라고 말한다. 

 

최근 네이버와 다음 등 웹툰에서 주인공의 극단적 선택을 표현하는 장면이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비록 이야기의 흐름에 필요한 장면이더라도,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 노골적이거나 희화화됐다는 비판이 높다. 웹툰 등급제 시행을 앞둔 시점에서 ‘창작의 자유’를 근거로 표현 수위를 넘나드는 웹툰이 관람 연령대를 고려한 표현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웹툰 등급제’ 이달 중 시행…네이버 등 10개 플랫폼 참여

 

10일 웹툰 업계에 따르면 웹툰 등급제는 이달 중으로 시작될 예정이다. 웹툰 등급제에는 네이버와 다음을 비롯한 10개 플랫폼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등급은 △전체 이용가 △12세 이상 △15세 이상 △19세(18세) 이상으로 분류될 전망이다. 

 

웹툰 등급제가 시행되면 현재 연재 중인 작품을 중심으로 등급이 표시될 것으로 보인다. 휴재 중이거나 완결된 작품의 경우 시일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하지만 웹툰 등급제가 도입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 개인의 판단과 노력이다. 웹툰 등급제가 ‘자율 규제’에 속하기 때문이다. 40여개에 달하는 웹툰 플랫폼 가운데 10개 플랫폼만 참여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웹툰의 적정 표현 수준에 대한 일반인과 작가 간의 이견이다. 

 

지난해 만화발전위원회와 한국만화가협회가 발간한 ‘웹툰 자율 규제 연령등급 기준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일반인과 작가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극단적 선택 등의 적절한 등급에 대해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음주, 규제 약물, 자해 및 자살 등이 사실적이고 반복적으로 표현된 것’을 18세 이상 관람가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일반인에서는 70.4%에 달했지만, 작가들은 56.6%에 그쳤다. ‘음주, 규제 약물, 자해 및 자살 등이 묘사되어 있으나, 조장하거나 반복적으로 표현되지 않은 것’을 15세 이상 관람가로 봐야 한다는 의견에서도 일반인은 45.8%, 작가는 34.9%로 차이를 보였다. 

 

보고서는 극단적 선택에 대한 표현은 15세 이상부터 관람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15세 이상의 경우에도 ‘작품의 주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자살 등의 소재를 지속적이거나 구체적이지 않게 다루는 것’으로 보고 있고, ‘자살 등의 소재를 지속적이고 구체적으로 다룬 것’은 18세) 이상으로 적시했다. 

 

◆웹툰, 독자에 미치는 영향 고려해야

 

웹툰 속 극단적 선택을 표현한 장면이 실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는 없지만, 최근 미국의 사례를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지난달 AP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전국어린이병원(NCH)의 제프 브리지 박사가 넷플릭스 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13 Reasons Why)’가 방영된 기간의 10∼17세 자살 건수를 조사한 결과 급증한 것으로 파악됐다. 드라마는 10대 여주인공의 극단적 선택에 얽힌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드라마가 방영되고 1개월이 지난 2017년 4월 190명의 청소년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는 5년 전에 비해 무려 30% 증가한 수치이자 19년 만에 최고치다. 다만 극단적 선택을 한 청소년들이 이 드라마를 시청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동안 웹툰에 대한 심의나 규제는 방송 등에 비해 자율적인 분위기였다. 웹툰을 심의하거나 규제할 경우 창작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어서다. 

 

하지만 웹툰 시장이 커지면서 몇몇 작품의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표현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웹툰의 독자 상당수가 어린이나 청소년인 만큼, 웹툰이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중앙자살예방센터 관계자는 “웹툰에서 자살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거나 희화화되는 부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면서도 “창작물인 만큼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지 고민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사진: 네이버 웹툰 화면 캡처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