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이모(29)씨는 택배받을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택배를 신청할 때마다 메시지에 ‘꼭 집 앞에 나둬 달라’고 글을 남기지만 택배기사가 매번 집과 멀리 떨어진 경비실에 택배를 가져다 놓아서다. 택배가 몰리는 명절에는 좁은 경비실에 택배를 찾으러 오는 주민과 쌓인 택배에 치이기 일쑤다. 주민도 경비원도 불만이다. 이씨는 “택배기사에게 집 앞에 놓아달라고 메시지를 10번도 넘게 남겼지만 고쳐지지 않는다”고 투덜거렸다. 경비실 문엔 ‘택배 분실 시 책임지지 않는다’는 문구가 붙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직장인 나모(33)씨 역시 택배기사가 소리 소문 없이 택배를 문 앞에 놔두고 가 상품이 제대로 왔는지 바로 확인할 길이 없다고 전했다. 그는 “예전에는 택배가 오면 직접 찾아와 전달해줬는데 이제는 경비실에 두거나 문 앞에 두고만 가버린다”며 “빨리 배달해야 하는 심경은 알겠지만 서비스는 점점 안 좋아지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2일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온라인쇼핑과 홈쇼핑 활성화로 국내 택배시장은 지난해 5조6673억원 수준까지 성장했다. 3년 전 대비 30% 성장한 셈이다. 하지만 택배로 물건을 주고받는 게 일상이 된 상황에서 서비스의 질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택배는 본래 ‘대면배송’이 원칙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택배표준약관에 따르면 “사업자는 운송물의 인도 시 수하인으로부터 인도확인을 받아야 하며 수하인의 대리인에게 운송물을 인도하였을 경우에는 수하인에게 그 사실을 통지한다”고 명시돼 있다. 다만 수하인의 부재로 인해 운송물을 인도할 수 없을 때에 한해 “운송물을 인도하고자 한 일시, 사업자의 명칭, 문의할 전화번호, 기타 운송물의 인도에 필요한 사항을 기재한 서면(‘부재중 방문표’)으로 통지한 후 사업소에 운송물을 보관한다”고 예외조항을 두고 있다.
하지만 택배기사가 수하인과 사전연락 없이 문 앞에 물건만 두고 가는 경우가 심심찮게 일어난다. 이럴 경우 분실이나 훼손 위험이 높아진다. 한국소비자원의 ‘택배 관련 피해구제 접수 건수’는 2016년 306건에서 2017년 336건, 지난해 349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피해유형을 살펴보면 운송물의 분실이 154건(44.1%)으로 가장 많았고 운송물 훼손이 120건(34.4%), 배송지연·계약위반 등이 20건(5.7%)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아파트나 오피스텔의 경우는 배송기사가 택배를 호수마다 전달하지 않고 경비실에 모두 맡기고 가기도 한다. 경비원 사이에서 택배 분류, 전달이 경비보다 더 중요한 업무라는 푸념이 나올 정도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경비원은 “택배를 경비실에 모두 두고 가 불편하다는 주민들의 민원을 택배기사에게 전했지만 말을 듣지 않는다”며 “경비실이 비좁아서 문을 닫아뒀더니 경비실 문 앞에 택배를 두고 가더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택배업체는 고객이 집에 있는지 일일이 다 확인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택배기사는 “택배를 전달하는 루트에 따라서 배송시간이 다를 수 있고 일부 건물은 출입이 통제되기도 해 정확히 전달하는 게 쉽지 않다”며 “고객이 집에 없는 경우도 많고 가정주부라도 택배 받으려고 하루 종일 기다릴 수 없으니 임의배송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통합물류협회 관계자도 “대면배송 원칙을 대부분 택배기사들이 알고 있지만 실질적인 상황을 보면 원칙대로만 볼 수 없다”고 어려움을 전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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