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대이란 제재 복구 차원에서 한국 등 8개국에 한시적으로 예외를 허가했던 원유거래를 다시 금지하기로 하면서 국내 정유·화학사에 불똥이 튀게 됐다. 제품 경쟁력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하지만 원가를 결정짓는 원료 구매는 그중에서도 핵심이다. 제재의 핵심인 이란산 초경질유는 품질이 우수하면서도 가격 경쟁력까지 갖춰 그간 국내 기업이 선호했다.
정유·화학사들은 작년 연말부터 시작된 업황부진(다운사이클)에 이번 사태가 겹쳐 실적 부진이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란산 원유 수입을 통해 돌파구를 연 대이란 수출도 타격을 받게 됐다.
22일 한국석유공사와 업계에 따르면 지난 2월 국내 원유도입 물량에서 이란산은 844만배럴로 전체의 8.6%를 차지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미국, 이라크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많다.
‘콘덴세이트’라 불리는 이란산 초경질유는 석유화학제품의 기초연료인 나프타 함량이 다른 유종보다 높고 가격이 저렴해 국내 도입 비중이 전체의 절반에 달한다. 초경질유는 기존 원유보다 가벼운 유분으로 석유화학업체에 최적화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란산 초경질유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 배럴당 2, 3달러에서 6달러가량 싸다”며 “판로가 여의치 않은 이란의 할인 정책 덕분”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현대오일뱅크, SK인천석유화학, SK에너지, 한화토탈 등 4개사가 이란산 원유를 수입한다. 이란산 초경질유는 SK인천석유화학, 현대케미칼, 한화토탈 등 3곳이다.
수급 불안정 리스크가 큰 국제유가의 움직임도 관심이다. 이란산 거래 금지→공급 축소→국제유가 상승으로 이어질 경우 대외변수에 취약한 업종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이 크고작은 영향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당장 관련 보도가 나오자 국제유가는 급등했다. 이날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와 브렌트유는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만 이 역시 ‘이란산 석유 파동’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문병기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유가 상승에는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되 상승폭 자체는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관련 업계나 정부는 수입선 다변화 등으로 꾸준히 대비했던 터라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지난해에도 미국이 한국 등에 대한 예외 인정을 발표하기 전까지 9∼12월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지 않은 적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카타르, 러시아 등 대체시장이 있다”면서 “다만 원가 경쟁력이 약화하고 그로 인해 실적에 부담이 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도 “석유화학업체 3곳 정도가 이란산 초경질유에 특화돼 있어 비용 상승과 수율 하락 등의 문제가 있지만, 수급 불안정을 부를 정도는 아닌 것으로 파악한다”며 “초경질유 대신 나프타를 수입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초경질유에서 나프타를 얻고 여기서 합성섬유의 중간원료로 쓰이는 파라자일렌(PX)을 얻는 만큼 초경질유 공급이 안 되면 원유 부산물인 나프타를 바로 확보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설명이다.
수출에도 악영향이 우려된다. 국내 은행의 원화결제계좌를 이용한 이란과의 교역을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란은 우리나라에 원유를 수출하고 받은 원화를 우리나라 은행의 원화결제계좌에 쌓아놓고, 이후 우리 기업이 이란에 제품을 수출하면 이 원화결제계좌에서 원화로 대금을 받아간다. 이란산 원유 수입이 막히면 우리나라의 이란 수출은 사실상 멈출 수밖에 없는 구조다.
조현일 기자 con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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