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아이들 마음고생의 비밀 - 더 힘들어하고 더 많이 포기하고 더 안 하려고 하는/김현수 지음/해냄/1만6800원
“아이들이 의미 있는 타인을 만나는 활동, 세계가 연결되는 활동이 현저히 줄었습니다. 여행, 독서, 만남도 줄어든 세상에서 아이들은 셀피로 가득찬 자기 사진첩만 계속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어른이라곤 부모와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뿐입니다. 아이들의 세계는 정말 한없이 축소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본인과 비슷한 친구, 그리고 그 친구의 친구들로 이루어진 유유상종의 아이들은 타인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복제판일 수도 있습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청소년이 날로 늘어간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공부 감옥에 갇힌 채 생기를 잃어가는 아이들.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최선을 다해 가르쳤다고 여기는 부모와 교사들로선 혼란스럽다.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저자 김현수(사는기쁨 신경정신과의원 원장·사진) 박사는 청소년 문제행동의 근원을 파악하고 사회 구조적 해결을 위해 30여 년 동안 노력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다. 그는 “갈수록 멀어져가는 두 세대를 잇고 그 상처를 치유키 위해 이 책을 펴냈다”고 말했다.
저자가 만난 청소년들은 초등학교 때 수치심을 배웠고, 중학생 때 외로움에 시달렸으며, 고등학생 때는 불안에 휩싸였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이번 생은 망했다(이생망)’고 절망감을 토로했다고 한다. 이 같은 ‘망함의 감정’들의 원인은 개인 차원에 그치지 말고 사회 구조적 차원에서 들여다봐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각자도생을 삶의 지표처럼 여기는 부모들은 단 하나의 성공법칙인 ‘공부’에 자녀들을 올인시키며 ‘과잉보호’한다. 그럼 아이들은 행복한가? 자발적으로 삶의 목표를 세우며 성취해나가는가? 현실은 그 반대다. 대부분의 아이는 부모와 교사의 기대를 채울 수 없고, 그로 인해 가정과 사회에서 ‘패배자’로 낙인찍힌다. 처음엔 분노하던 아이들은 수치심과 자기 혐오감이 마음 밑바탕에 채워지면서 파괴적·공격적 행동을 한다.
저자는 “이런 상태가 위험한 이유는 청소년기에 경험한 부정적 감정이 만성화하며 이후 삶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단절된 관계 속에서 아이들은 낮은 자존감과 생에 대한 의욕 상실에 시달리며 어른 아닌 어른이 된다. 다시 말해 기성세대 어른들이 아이들의 마음고생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 문제를 악화시키는 근원이라는 얘기다.
아이들의 자기 주도성을 빼앗는 ‘주범’ 중 하나는 입시 위주 공부다.
학교와 학원에 갇힌 채 거의 모든 시간을 공부라는 활동에 빼앗겨야 한다.

저자는 “이 입시 교육과 성공의 좁은 문 체제가 사회적 파국의 기초”라며 “21세기 4차 산업혁명에도 적합하지 않은 입시 중심의 획일적 사회가 이른 시일 안에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어른들이 먼저 주체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간섭과 지시가 아니라 아이들로부터 건강한 독립을 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린이 문학이란 ‘태어나길 잘했다’ 하고 응원을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은 다만 어린이 문학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어린이, 청소년은 다음 세대를 이끌 소중하고 중요한 사회 구성원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사회적 요구와 교육 환경은 과연 이 나라의 청소년과 아이들에게 열렬한 응원을 보내고 있을까. 나의 학창시절보다 더 지독해진 입시경쟁은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인기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입시경쟁이 문제로 지적되던 그 당시에도 개성이 중요한 시대, 새로운 패러다임 등의 말이 흘러나왔지만 우리의 교육환경은 일보 전진도 없어 보인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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