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바 '탈코르셋 운동'은 벗어나자는 뜻의 '탈(脫)'과 여성 억압의 상징 '코르셋(체형 보정 속옷)'을 결합한 말로 다이어트, 화장, 렌즈 등 꾸밈 노동으로 상징되는 여성 억압적 문화로부터의 해방을 부르짖는 것을 뜻합니다.
탈코르셋을 외치는 여성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탈코르셋을 해시태그(#)로 한 뒤 부러뜨린 립스틱 등의 화장품, 짧게 자른 머리카락, 노메이크업에 안경을 착용한 인증샷을 올리는데요.
최근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쿠투(#KuToo) 운동'도 탈코르셋 운동의 일환입니다.
일본어로 구두를 뜻하는 '쿠쯔(靴)'와 괴로움을 의미하는 '쿠쯔(苦痛)'의 'Ku'와 'MeToo(미투)의 'Too'가 합쳐진 조어인데요.
#쿠투는 지난 1월 배우 이시카와 유미가 자신의 트위터에 여성이 호텔에서 다리를 다쳐가며 일해야 하는 현실에 의문을 제기한 게 쿠투의 시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는 "언젠가 여성이 일 때문에 힐이나 펌프스를 신지 않으면 안 되는 풍습을 없애버리고 싶다"고 했는데요. 이시카와가 아르바이트로 장례식장에서 조문객 안내를 했는데, 5~7cm 굽 길이의 검정 펌프스를 신는 게 규정으로 정해져 있었다고 했습니다.
◆1020대 여성들 "화장 안 하고, 렌즈 안 끼면 어때?"
최근 코르셋이란 단어는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억압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가부장적인 억압으로부터 해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탈코르셋 운동이며, 대표적인 예가 '노브라'입니다.
다만 노브라를 향한 사회적 시선은 아직 차갑기만 한데요. 그룹 에프엑스 출신 설리가 노브라 사진을 '자신있게' 게재할 때마다 매번 논란이 일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 여성들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실제 걸그룹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선정적인 의상이나 짙은 화장 등 지금껏 K팝 여성 아이돌 가수들에게 당연히 기대되던 일정한 외모상에서 벗어나려는 탈코르셋 움직임이 점차 늘고 있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1020대 여성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탈코르셋 운동의 영향이 이들이 주된 소비층인 K팝 아이돌 산업에 미치면서 걸그룹 탈코르셋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이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인데요.
현재 논란이 있으나 앞으로도 이런 흐름이 지속될 경우 걸그룹 소속사와 시청자 모두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여대·여성동아리 중심, 가부장적 억압에서 해방되고픈 여성들 '탈코르셋 운동' 벌여
탈코르셋은 개인이 할 수 있는 페미니즘 운동 가운데 가장 쉬운 것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9월부터 10월 두 달동안 153명의 대학생을 상대로 탈코르셋을 주제로 실시한 심층 인터뷰에서 상당수가 ‘페미니즘을 실천하기 위해 탈코르셋을 하고 있다’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연구원은 지난 1월 18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양성평등추진전략사업 보고서’를 발간했는데요.
보고서에 따르면 많은 대학생이 탈코르셋을 학내 커뮤니티 등 자신이 속한 여성중심 단체나 이론 공부 등을 통해 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탈코르셋 운동을 실천하는 사람이, 이를 온라인 공간에 인증하면 다른 사람이 이를 보고 호응하는 방식으로 운동이 전파됩니다.
한 여성은 "1020대를 중심으로 SNS에서 자신이 탈코르셋한 모습을 인증하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며 "탈코르셋을 실천한 이들은 본인이 속한 여성중심 집단에서 영향을 받아 시작한 경우가 많다"고 전했습니다.
이에 반해 여성이 다수인 집단을 중심으로 탈코르셋 운동이 퍼져 나가는 것을 한계로 보는 이들도 있었는데요.
보고서는 "탈코르셋 운동이 여대와 여성주의 동아리를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남녀공학이나 남성이 많은 그룹에 속해 있는 대학으로는 퍼져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女 학벌 좋으면 연애 부담?"…기존 연애 관념·방식 거부, '탈연애' 현상 확산
이런 가운데 1020대 사이에서 기존의 연애 관념을 거부하는 '탈연애' 현상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기존 연애가 1대1 독점 소유, 고정된 성별 역할, 이성애 중심주의 등에 매몰돼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돼 사회운동의 성격을 띠고 전개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고정된 성역할, 이성애 중심주의 등 기존 연애 관념을 거부하는 탈연애 선언이 서울 도심에서 진행됐습니다.
탈연애선언팀은 지난달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탈연애 선언과 정상연애 장례식 퍼포먼스를 진행했는데요.
퍼포먼스는 검은색 관에 '탈 1대1 독점 소유 연예', '탈 이성애 중심주의 연애', '탈 성별 역할극 연애' 등 기존 연애 관념이 적힌 피켓을 넣고 헌화를 하는 식으로 펼쳐졌습니다. 참석자들은 헌화를 한 뒤 잠시 묵념의 시간을 갖기도 했는데요.
탈연애선언팀은 "비출산, 비혼, 이제 탈연애를 함께 말할 때가 왔다"며 "이 사회의 정상성을 규정하는 가부장제를 뒤흔들기 위해 모였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남성중심주의로 한정된 정상 연애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들은 "처음 탈연애를 생각한 것은 연애가 전혀 자유롭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라며 "치마 길이, 불법촬영 유포, 여자가 학벌 좋으면 부담 등 연애란 사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전문가들은 연애를 결혼·출산과 동일시하지 말고 청년층의 새로운 생활양식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취업난 등 경제적·사회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왜 연애하지 않느냐'고 재촉만 할 게 아닌, 그들의 가치관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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