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팬들이 내한을 손꼽아 기다려온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은 1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LA필하모닉 공연에서 그가 어떻게 100년 역사의 최정상급 교항악단을 완벽히 이끄는지 보여줬다. ‘살면서 꼭 해볼만한 직업’으로 해군제독, 프로야구 감독과 함께 왜 지휘자가 손꼽히는지 실감나는 연주였다. 지휘봉과 손은 물론 때로는 춤추듯 때로는 호소하듯 온몸을 동원해 단원들에게 세세한 주문을 하며 악단을 이끌었다. 단상에서 펄쩍 뛰기도 하고 선율이 절정으로 치달을 때는 이를 이끄는 콧노래가 객석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마치 선율이 뿜어져나오는 듯한 그의 지휘봉에서 관객들은 시선을 떼기 어려웠다. 무대 뒤편 합창석에 앉은 관객 중에는 공연 내내 턱을 팔에 괸 채 넋을 잃고 두다멜만 바라보는 이들도 보였다.

이처럼 인상적인 지휘로 두다멜이 들려준 곡은 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 애초 말러가 5개 악장의 2부로 구성한 교향시로 작곡했으나 이후 4악장의 교향곡으로 완성된 이 곡을 두다멜은 1,2악장 사이에 잠시 여백을 둔 후 거의 쉼 없이 이어갔다. 명성에 걸맞은 연주력을 보여준 LA필은 1,2악장에서 축적한 에너지를 3,4악장에서 아낌없이 분출했다. 특히 많은이들이 애청하는 장송행진곡 풍의 3악장 도입부에서 LA필의 팀파니와 콘트라베이스 주자는 비감한 선율과 박자로 말러가 주문한 ‘엄숙하고 신중하게, 느긋하지 않게’를 구현했다.
피날레인 4악장에선 총 8명의 호른 주자가 중심이 된 LA필은 마치 관객 눈앞에서 거인들의 위풍당당한 행진이 보이는 듯한 연주를 보여줬다. 두다멜의 격정적인 지휘로 피날레가 끝나자 객석은 10여분간의 기립박수로 호응했고 두다멜은 너댓번을 다시 무대로 불려나와 인사했다.
스타 지휘자·악단의 내한 공연답게 이날 공연에는 이채로운 장면도 많았다. 말러 교향곡 1번 연주에 앞서 LA필은 패셔니스타로도 유명한 중국 피아니스트 유자왕과 존 애덤스 LA필 상임 작곡가의 ‘악마가 좋은 소리를 다 가져야 할까?(Must the devil have all good tunes?)’를 협연했다.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의 OST 느낌을 주는 이채로운 곡으로서 아시아 초연이었는데 곡이 끝난 후 객석 뒤편에서 관객 반응을 지켜보던 작곡가가 무대에 올라와 두다멜, 유자왕과 함께 인사했다. 두다멜은 기자회견에서 “존 애덤스의 곡은 까다롭지만 에너지가 있다”고 평했다.
악보를 제때 넘겨주지 못한 페이지 터너를 홀겨보는 동영상이 수년전 유명했던 유자왕은 이날 대화면 아이패드로 악보를 보며 연주했다. 연주에 맞춰 악보가 자동으로 넘어갔으나 한때 두세장이 한꺼번에 넘어가는 에러가 났으나 유자왕이 빠른 손놀림으로 화면을 되돌리며 연주를 이어갔다. 콘서트홀 로비에 마련된 두다멜과 LA필 대형 포스터 앞에는 기념사진을 찍기 위한 관객 줄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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