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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강제징용의 아픈 흔적…해남 ‘명반석 저장고’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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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3-02 10:00:00 수정 : 2019-03-02 15: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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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세계] 일제강점기 ‘명반석 저장고’는 근대문화유산이 될 수 있나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옥동리에 있는 명반석 저장고. 1945년 3월 제주도 방공호 건설현장에 끌려갔다가 해방 직후 배를 타고 오던 중, 화재사고로 숨진 해남 출신 징용자 120여명을 위한 위령탑이 앞에 있다. 해남=서재민 기자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옥동리의 옥동방파제에 가면 가로·세로 약 50m, 30m에 아파트 4층 높이 건물 한 동이 눈에 들어온다.

일본의 아사다(淺田)화학공업주식회사가 일제강점기 당시 해남 일대 한국인 징용자를 동원해 산에서 퍼 나른 명반석(明礬石) 임시 저장고다. 이곳은 포털사이트 지도에서 검색해야 겨우 찾을 수 있는 옥매산 중턱의 다른 저장고와 연결되어 있다. 1945년 3월 제주도 방공호 건설현장에 끌려갔다가 해방 직후 배를 타고 오던 중, 화재사고로 징용자 120여명이 숨진 옥매광산 비극의 일부이자 국내 강제징용의 아픈 흔적이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목소리와 더불어 저장고를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일제강점기 아픔을 되새기자는 옥매광산 희생자유족회의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해남군과 조선대학교의 건물 소유권 문제가 얽혀 매듭이 풀리지 않고 있다.

저장고 내부. 명반석을 수레로 나른 통로가 보인다. 해남=서재민 기자
◆미군 폭격·울돌목 근거리…‘근대문화유산’ 지정 목소리

지난달 21일 취재팀과 저장고를 둘러보던 유족회 박철희 회장(65)은 “징용자들이 광산에서 명반석을 실어와 저장고 옥상에서 부으면 천장에 뚫린 구멍을 통해 아래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수레로 받아냈다”며 “선착장에서 기다리던 일본행 화물선으로 돌을 옮겼다”고 밝혔다. 일제는 옮긴 명반석에서 알루미늄을 추출해 전투기 기체 재료로 썼다.

박 회장의 말 소리에 저장고 내부가 쩌렁쩌렁 울렸다. 강제 징용자의 고통과 눈물이 가득했을 장소라 생각하니 절로 숙연해졌다.

저장고 천장에 난 구멍. 징용자들은 광산에서 캔 명반석을 이곳으로 옮긴 뒤, 구멍을 통해 아래로 쏟았다. 해남=서재민 기자
저장고 한쪽 외벽에는 움푹 파인 자국이 보였다. 박 회장은 미군 군함의 폭격 흔적이라며 “커다란 건물이 바닷가에 버티고 있으니 일본군 진지라 생각하고 포를 쏜 것 같다. 일제강점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으므로 근대문화유산에 반드시 이름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이 펼쳐졌던 울돌목까지 직선거리로 5km 떨어져 있다며 저장고를 역사 교육현장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저장고는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사회단체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2017년 개최한 ‘이곳만은 꼭 지키자’는 공모전에서 ‘올해의 꼭 지켜야 할 자연·문화유산’에 지정되기도 했다.

◆저장고에 얽힌 소유권…유족 바람 실현 불투명

그러나 유족들의 바람이 실현될지는 불투명하다. 현재로선 가능성이 낮다.

해남군(10%)과 조선대(90%)의 저장고 소유권이 얽혀서다. 근대문화유산 지정 의지가 높은 군이 최근 조선대에 소유권 매각 의사를 물었지만 거절당했다. 

포털사이트 지도에서 캡처한 또 다른 옥매산 명반석 저장고로 추정되는 건물. 포털사이트 다음 캡처
해남군 관계자는 “지난 1월 조선대에 근대문화유산 지정 문제 협조 의향을 물었지만 불가능하다는 답을 받았다”며 “문화재에 관심 있는 조선대 교수님들을 설득했지만 (소유권 매각은) 별도 문제였다”고 설명했다. 옥매산 부지 매입 의사를 밝힌 군에 학교 측은 같은 답을 했다. 조선대는 옥매산 부지 약 133만㎡(40만평)를 갖고 있다.

조선대 관계자는 “옥매산은 학교의 수익형 재산”이라며 향후 개발 가능성이 있어서 협조에 응할 수 없었다고 사정을 설명했다. 특히 지난해 8월 교육부 대학기본역량평가에서 정원 감축과 재정지원 제한을 받는 역량강화대학으로 분류된 뒤, 외부 이사가 파견돼 그런 논의 자체를 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국 홍보 전문가’로 잘 알려진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2017년 저장고 인근에 세운 ‘옥매광산 역사이야기’라는 제목의 가로·세로 2m 크기 안내판에서 “일제는 군수품의 원료인 명반석을 얻고자 광산을 개발했다”며 “옥매광산은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강제동원지였다”고 밝혔다. 주민 사이에서는 일제의 광산개발로 산봉우리가 깎인 탓에 원래 173m였던 옥매산 높이가 160m 근처까지 낮아졌을 거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해남=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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