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딸아이가 화장을 너무 좋아합니다. 어릴 때부터 제가 쓰는 화장품을 관심이 많고, 혼자 머리를 묶거나, 예쁜 옷 입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는데요.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이대로 두어야 하는지 고민입니다."
"중학교 2학년인데 요즘엔 학교에서 틴트나 미백 선크림 등 화장을 하지 않으면 '왕따' 취급을 당합니다. 빠르면 초등학교 4학년, 느려도 6학년쯤에는 다들 화장을 시작합니다."

그동안 성인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화장을 시작하는 연령대가 급속도로 낮아지고 있습니다.
메이크업 문화는 이제 10대 청소년은 물론, 미취학 10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실제 화장품이 담겨있는 화장대를 갖춘 키즈(kid) 카페도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요.
지난해 8월 한 편의점에서 출시한 립스틱 모양의 사탕이 여자 아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미취학 10세 미만 아동도 화장하는 시대…화장대 갖춘 키즈카페도 속속 등장
온라인 쇼핑몰 11번가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어린이용 화장품 매출은 전년대비 363%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이제 4~7세 아이들도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을 통해 뷰티 영상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데요.
전과 달리 화장은 10대에게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고 있는 모습입니다.
녹색소비자연대 '어린이·청소년 화장품 사용 실태' 결과를 보면, 색조화장을 하는 비율을 조사한 결과 여학생의 경우 초등학교 42.7%, 중학교 73.8%, 고등학교 76.1%의 여학생이 색조화장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녹색소비자연대는 "색조화장이 초등학생부터 시작돼 청소년기에 본격화되는 실태는 보여주는 지표"라며 "올바르고 체계적인 화장품 사용 교육을 초등학교 시기부터 시작해야 할 필요성을 확인할 수 있는 조사 결과"라고 해석했습니다.

어린이 색조 화장품 시장이 급성장하고 메이크업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키즈 메이크업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은데요.
부모들도 걱정은 되지만 무작정 못하게 막을 순 없다고 말합니다. 메이크업이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문화로 자리잡은 상황이라 무조건 반대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김주덕 성신여자대학교 뷰티생활산업국제대학 교수는 최근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는 휴대전화 보급률이 높고, 유튜브가 보편화되었고, 미디어에서도 화장한 어린이가 흔하게 나온다"며 "아이들이 학교 및 과외 수업 등으로 놀 시간을 잃다보니 화장이 일종의 놀이문화로 발달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연구결과 부모가 화장을 한 경우 아이도 화장할 확률이 높았다. 화장놀이 등을 한 아동이 외모지상주의나 외모강박에 빠질 가능성은 당연히 높아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면서도 "다만 지금은 화장을 금지한다고 아이들이 하지 않는 상황이 아니어서 올바르게 하는 법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아이들에게 있어 화장은 일종의 '놀이문화', 금지한다고 해서 안 할 상황 아냐
어린이용으로 나온 화장품이 인체에 무해하다는 확신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데요.
정부는 현재 12개로 나뉜 화장품 유형에 만 13세 미만의 어린이용 제품군을 추가하고, 성분과 표시 기준을 강화하려고 했으나 지난해 6월 결국 철회했습니다.
어린이용 화장품을 공식화할 경우 오히려 어린이 화장을 부추길 수 있어 일단 방안을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미국 등 해외에서도 어린이 '꾸밈 노동'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은 상황입니다.
한 미국인 남성은 자신의 아이가 4살 때 엉덩이와 가슴에 패드와 같은 일종의 보형물을 착용하고 어린이 미인대회에 출전한 것을 두고 전 부인을 아동학대로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프랑스는 소녀들이 참가하는 미인대회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등 어린이들이 '외모지상주의'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위험을 줄이기 위한 법안을 마련하기도 했는데요.
이 법안을 제출한 프랑스의 한 국회의원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외모로만 평가받는 생각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입법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정석윤 농협구미교육원 교수는 최근 한 언론사에 기고한 칼럼에서 "우리 아이들이 취학도 하기 전부터 '여성은 예뻐야 한다' '예뻐지려면 화장을 해야 한다'와 같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고, 더나아가 사고력 및 창의력 향상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될까 우려된다"며 "이를 고려하지 않은 관련 업체의 무리한 마케팅과 따돌림을 우려한 나머지 일부 학부모의 방관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요.

이처럼 유치원생까지 번진 우리나라의 화장 열풍을 최근 워싱턴포스트가 집중적으로 조명했습니다.
'K-뷰티'로 아시아 시장을 평정한 한국 화장품 업계가 이제 새로운 고객층, 어린이들에게 주목한다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의 화장 열풍에 대한 찬반 논란도 전했는데요. 부모와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지만, 어릴 때부터 외모에 대한 가치를 주입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화장하는 어린이들을 상품화하는 현상도 짚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어린이 화장품 산업은 놀라운 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다"며 "'K-뷰티' 화장법을 따라하려는 미국 내 여성들은 10대부터 유명 여성 정치인들까지 다양하다"고 전했습니다.
◆업체들 아이돌 내세운 '키즈 메이크업' 마케팅도 한몫…10대男 화장 열풍 동참?
한편 최근 화장하는 남성들이 늘고 있습니다. 남성 화장품도 기초 화장품 수준을 넘어 다양해지면서 시장이 1조원을 넘어섰는데요.
이같은 트렌드 변화를 이끄는 것은 남성 아이돌입니다.
이들이 국내를 넘어 각국에서 인기를 끌자 10대를 중심으로 화장에 거부감 없는 남성들이 늘어난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제 BB크림쯤은 화장으로 치지 않을 정도다 보니 남성 화장품 시장도 1조3000억원대로, 8년 사이 두 배 가량 커졌는데요.
트렌드가 변하고,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다 보니 남성 뷰티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화장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남성도 늘어 한 대학교 뷰티학과는 학생 22명 중 남성이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7명이나 됩니다.
자신을 가꾸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 남성들의 저변이 10대까지 확대하고 있는 가운데 올해도 뷰티업계에는 '남성 화장 열풍'이 불어 닥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사진=방송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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