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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역사 - 2월25∼3월3일] 중·소의 뒤늦은 국경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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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2-24 21:45:03 수정 : 2019-02-24 21:4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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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3월2일 중국과 소련이 만주 쪽 국경 우수리 강(烏蘇里江)의 전바오 섬(珍寶島)을 두고 무력충돌을 벌이자 세계는 너무 놀랐다.

공산주의 세계를 쌍두마차처럼 이끌던 두 대국이 작은 섬 하나를 마르크스의 ‘자본론’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듯해서였다. 러시아어로는 ‘다만스키 섬’으로 불리는 이 섬은 불과 0.74㎢로 대부분의 지도에는 나타나지도 않는다.

그 사건은 1956년부터 시작된 중·소 이념분쟁의 결과지만 어찌 보면 그것은 너무 늦게 일어난 국경분쟁이기도 했다.

두 나라의 국경이 4380㎞나 된다는 것은 두 나라가 모두 대국이라는 말이며, 두 거인이 몸을 맞대고 있으면서 친한 경우는 드물다.

중·소 국경과 반대편에서 세계의 인구 1·2위 대국들이 접하고 있는 3500㎞의 국경은 그보다 10년 전인 1959년부터 시끄러워지기 시작한 데다 아직도 해결이 요원해 보인다.

중·소가 역사적으로 처음 국경충돌을 벌인 것은 아니다.

16세기 말부터 러시아는 동진을 계속해 1639년에는 태평양에 이르렀으니 청나라와의 마찰은 필연적이었다.

러시아가 18세기에 조성한 도시 블라디보스토크는 ‘동방(Vostok)’을 ‘정복(Vladi)’한다는 뜻이다.

청나라와 러시아는 드디어 1650년대부터 양국이 충돌해 조선의 조총수들이 청나라를 돕기도 한 끝에 1689년 양국이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어 국경은 잠잠해졌다.

그러나 19세기에 접어들어 청나라가 아편전쟁 등으로 열강의 호구가 되자 러시아도 끼어들어 1860년 베이징 조약에서 헤이룽장 강 이북과 연해주를 차지했다.

하지만 국경은 애매한 부분이 많아 말썽의 소지는 잠재해 있었다.

그래도 2차 대전 이후 중·소가 사회주의 형제국처럼 되자 국경문제는 잠잠해진 듯했으나 두 나라가 이념분쟁을 일으키자 맨 먼저 국경 문제가 삐걱거렸다.

두 나라는 소련이 해체된 뒤인 1994년에야 중·러 국경협정을 체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전바오 섬은 중국에 귀속됐다.

양평(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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