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포스트는 이날 “북·미 정상회담이 다가오면서 트럼프 정부가 대북 정책을 놓고 내부적으로 분열됐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언론매체 복스(Vox)는 “미국의 대북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총체적 난국(total chaos)에 빠졌다”고 전했다. 또 다른 매체인 슬레이트(Slate)는 “김정은과 협상에 나서는 트럼프의 입장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허약하고, 김정은이 ‘세기의 딜’에 성공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는 주요 정상회담이나 국제회의 등을 앞두고, 기자들과 ‘컨퍼런스 콜’을 한다. 이는 백악관 브리핑 룸에서 기자들을 대상으로 공개 또는 비공개 브리핑을 하는 것과는 다르다. 트럼프 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백악관 출입기자와 2차 북·미 정상회담 취재 신청을 한 기자들을 전화 회선으로 서로 연결한 브리핑을 했다. 현안 설명에 나선 고위 당국자의 이름과 직책을 밝히지 않는 대신에 그가 말한 내용을 ‘정부 고위 당국자’라는 익명으로 기사화할 수 있는 소위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한 것이다.
이 고위 당국자가 “나는 북한이 비핵화하는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대북 협상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줄곧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고 주장해왔으나 그가 이런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발언을 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해 12월 폭스 뉴스와 인터뷰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동의한 대로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폼페이오 장관은 21일 폭스 비즈니스뉴스와 인터뷰에서도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 회담에서 약속한 북한의 비핵화 실현을 위한 작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건 특별대표는 최근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지난해 10월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 당시에 김 위원장이 북한의 모든 플루토늄 및 우라늄 시설을 폐기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언론매체 복스는 이날 “정부 고위 당국자의 회의적인 발언은 트럼프 정부가 그동안 거짓말을 해왔든지 아니면 대북 협상이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정부는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나서면서 대북 제재에 관한 강경한 입장을 점점 누그러뜨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 기자들에게 북한의 상응 조치를 전제로 “대북 제재를 풀어주고 싶다”고 했다. 폼페이오 장관도 지난주 CBS 방송과 인터뷰에서 “대북 제재 완화를 대가로 좋은 결과를 얻어내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했다. 비건 특별대표는 또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북한이 주장해온 ‘단계적·동시적 접근’ 방식 수용 입장을 밝혔었다.
워싱턴 포스트는 21일 “볼턴과 같은 강경파가 최대의 압박 전략 유지를 주장하면서 단계별 접근 방식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WP는 “볼턴 보좌관은 북·미 협상이 실패할 것으로 여전히 믿고 있고, 북한과 협상을 타결하려는 비건 팀에 개인적으로 짜증을 내고 있다”고 전했다. WP는 “볼턴뿐 아니라 최근 관계부처 회의에서 재무부, 국방부 고위 관리들이 비건 대표에게 대북 제재 완화, 종전 선언 등을 하지 못하도록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WP는 “비건 팀의 목표는 협상 타결이지만 정부 내 다른 당국자들은 강경 노선을 유지하는 게 목표”라고 지적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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