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단행될 신임 헌법재판관 인사에서 ‘재판관 부인’과 ‘대법관 남편’이 탄생할 가능성이 제기되다. 성사될 확률이 아주 높다고 단언하긴 어려우나 만약 이뤄진다면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슈퍼파워’ 법조인 커플로 기록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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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형 대법관(왼쪽)과 전현정 변호사 |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김현)는 오는 4월18일 임기만료로 물러나는 서기석·조용호 헌법재판관 후임 후보자로 법조인 6명을 추천했다. 새 재판관 2명의 임명권은 문재인 대통령이 갖고 있는데 그가 변협이 추천한 후보를 받아들일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6명의 후보자 중 단연 눈길을 끄는 이는 전현정(53) 변호사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출신 김재형(54) 대법관과 부부이기 때문이다. 둘 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남편인 김 대법관은 1986년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18기로 수료한 뒤 법조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원래 판사로 시작한 그는 얼마 안 돼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가 2016년 9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에 임명됐다.
부인인 전 변호사는 남편보다 4년 늦은 1990년 제32회 사시에 합격(연수원 22기)한 뒤 23년간 줄곧 법관의 길을 걷다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로 일하던 2016년 2월 사표를 내고 법원을 떠났다. 남편의 대법원 입성을 7개월가량 앞둔 시점이었다. 현재는 법무법인 케이씨엘에서 고문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변협은 전 변호사를 헌법재판관 후보로 추천하며 “판사 시절부터 인권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며 “한센인 소송과 개인정보 유출사건, 군인 자살사건 등 재판을 맡아 헌법상 기본권을 토대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등 헌법 감각이 남다르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전 변호사가 2016년 법복을 벗으며 서울중앙지법의 동료 및 선후배 판사들에게 남긴 ‘퇴임의 변’은 아직까지도 법원 안팎에서 널리 회자된다.
‘재판을 하면서 냉정하게 결론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많았지만, 가슴 아픈 사연에 눈물을 삼켜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사건 속에서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고, 생각할 수 없었던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접했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사람은 끊임없이 인생이란 것을 알아가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배워나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당시 그는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말 못할 아픔이 있을 수 있다”며 “그 아픔을 이해하고 법적으로 도움을 주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고 변호사로서의 포부를 밝혔다. “시간을 두고 새로운 삶의 여정을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제게 맞는 역할을 찾고 싶다”고도 했다.
김 대법관과 전 변호사 부부는 ‘학문적 동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김 대법관이 서울대 법대 및 로스쿨 교수 시절 어느 제자로부터 “하루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 언제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밤에 잠들기 전에 부인(전 변호사)과 법률에 관한 토론을 할 때”라고 답변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현재 헌재는 여성 재판관이 이선애(판사·변호사 출신), 이은애(판사 출신) 2명이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7년 여성이고 검사 출신인 이유정 변호사를 재판관에 임명하려다 내츄럴엔도텍 주식 관련 의혹으로 낙마하는 시련을 겪었다. 이번에 여성 재판관이 추가로 임명되면 재판관 9명 중 3분의1이 여성으로 채워진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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