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은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양승태 전 대법원장, 김경수 경남지사 등 이른바 ‘범털’(사회에서 거물급 인사였던 재소자를 일컫는 은어)의 수감생활에 특히 관심이 많다. 전직 대통령의 구속수감 직후 독방 배정, 샤워실 제공 등을 둘러싸고 ‘특혜’ 논란이 일어난 것도 그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그간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진 절대다수 평범한 교정시설 수용자들의 인권 및 처우 개선 필요성을 환기시키는 효과도 낳았다.
◆구치소 거실에 온수 설비? "헌법상 의무 아냐"
7일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올겨울 들어 ‘구치소 수용거실 내에서 온수를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취지의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범죄 혐의로 국내 한 구치소에 수감 중인 A씨는 지난달 8일 헌재에 접수한 청구서에서 “구치소 수용거실 안에 온수사용설비를 설치하지 않은 국가의 부작위(不作爲·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로 인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이같은 부작위가 헌법에 어긋나는 것임을 헌재가 확인해달라”고 요구했다.
헌재 제1지정재판부(재판장 유남석 헌재소장)는 A씨의 헌법소원을 최근 ‘각하’ 처분했다. 각하란 헌법소원 제기에 필요한 기본적 요건을 갖추지 못해 더 이상 살펴볼 것도 없이 사건을 종결한다는 뜻이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공권력 불행사에 대한 헌법소원은 공권력 주체에게 헌법에서 유래하는 특별히 구체적인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권력 주체가 그 의무 이행을 게을리하는 경우만 허용된다”고 전제했다.
이어 “구치소 수용거실 내에 온수사용설비를 설치해야 할 의무는 헌법 명문상 규정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헌법 해석상으로도 그러한 구체적 의무가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 사건 심판 청구는 부적법하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구치소 수용거실에 온수사용시설을 설치할 의무가 국가에 없으므로 해당 의무 불이행을 지적하는 헌법소원 청구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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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수용된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구치소 전경. 2017년 9월 개소해 건물이 깨끗하고 시설도 훌륭하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일반 국민 입장에선 헌재의 논리가 다소 부당하게 느껴질 수 있을지 모른다. ‘아니, 명문 규정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 엄동설한에 구치소 재소자한테 온수를 제공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건가?’
정확히 이해하려면 구치소 등 교정시설 구조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흔히 ‘감방’이라고 부르는 교정시설 내 공간의 정식 명칭은 ‘수용거실’, 줄여서 ‘거실’이다. 여러 명이 함께 쓰는 방은 ‘혼거실’, 전직 대통령처럼 혼자 쓰면 ‘독거실’이라고 각각 부른다.
최근에 새로 지은 교정시설은 좀 다를 수 있겠으나 대다수 교정시설은 수용거실 안에는 샤워를 할 공간이 없다. 간단한 세면시설과 변기 정도만 설치돼 있을 뿐인데 여기서 온수는 나오지 않는다. 수용거실을 나서 모든 재소자가 함께 쓰는 공동 목욕탕으로 가야 비로소 따뜻한 물로 몸 전체를 씻을 수 있다.
현행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33조 1항은 수용자가 건강 유지에 필요한 목욕을 정기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겨울에 교정시설 재소자는 1주일에 한 번, 20∼30분가량 공동 목욕탕에서 단체로 샤워를 한다. 거실에 온수사용설비가 없는 만큼 매일 한정된 양의 온수를 마치 배급을 받듯이 받아 세수, 빨래 등도 해결한다.

문제는 국내 상당수 구치소·교도소가 시설이 노후하고 열악한데도 정원보다 훨씬 많은 재소자를 수용하고 있다 보니 대다수 수용자가 온수 샤워 등에 불편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전국 교정시설 인권 실태를 조사한 뒤 “수용자들의 인간 존엄을 훼손하는 과밀수용 개선이 시급하다”고 정부에 권고했다. 인권위 조사 결과 겨울철 온수 샤워는 1인당 주 1회만 가능한데 마침 해당 요일이 공휴일이거나 접견 등 일정으로 차례를 놓칠 경우 1주일 내내 온수로 씻지 못하는 실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수용자 간 다툼과 입실 거부, 징벌 등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게 인권위의 지적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이런 열악함 때문에 ‘차라리 입실 거부를 택하고 징벌방으로 가서 독방을 쓰겠다’고 말하는 수용자도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그런 와중에 몇몇 ‘범털’ 재소자는 혼자 쓰는 독거실 안에 온수가 나오는 개인 샤워 공간까지 갖추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니 다수의 평범한 일반 수용자 입장에선 부아가 치밀어 오를 수밖에 없다. 실제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의 박 전 대통령 독거실과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구치소의 이명박 전 대통령 독거실에는 샤워실이 딸려 있다.
교정당국은 “전직 대통령들도 법과 원칙에 따라 일반 수용자와 동등하게 처우하되 김영삼정부 시절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수용 사례도 고려해 엄정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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