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베 총리는 지난달 23일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다보스포럼)에 안경을 낀 낯선 모습으로 연설해 주목을 받았다. 이어 지난달 30일에도 안경을 착용한 채 국회 시정연설을 진행했다.
◆“부친 아베 전 외상 쏙 닮았다” 의도적 부각
아베 총리가 안경 낀 모습으로 등장하자 일본 정계와 미디어에서는 부친인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1924∼1991) 전 외무상을 연상시킨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아베 전 외무상의 트레이드마크가 굵은 테의 검은 색 안경이었다. 아베 총리가 안경을 착용한 모습에 “역시 (부친을) 닮았다”(마이니치신문), “아버지가 (단상에) 서있다”(아사히신문) “아버지를 생각나게 한다”(니혼게이자이신문) 등과 같은 동료 의원들의 말을 일본 매체들이 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베 총리는 왜 갑자기 불테 안경을 끼고 등장했을까. 크게 두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하나는 러·일 평화조약 체결에 승부수를 건 아베 총리가 대소(對蘇)관계에 전력했던 아버지 아베 전 외무상의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아베 전 외무상은 아베 총리와는 달리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정권에서 외무상(1982∼1986)을 맡아 한국, 중국, 소련 등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에서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했다. 특히 1990년 일본을 방문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이 입원 중이던 그를 병문안할 정도로 소·일 관계 개선에서 큰 역할을 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6일 새해를 맞아 아버지 묘소 참배 후 기자들과 만나 “아버지가 일·소 관계 개선과 북방영토 문제, 평화조약 문제에 몰두했었다”며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든 전진시키고 있다. 이 영토문제와 평화조약 문제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을 (부친 묘소 앞에서) 다짐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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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뿔테 안경을 착용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부친 고 아베 신타로 전 외무상. 연합뉴스 |
전후 외교 총결산을 외치고 있는 아베 총리가 소련과의 관계 개선에 돌파구 마련에 일익(一翼)을 담당했던 아버지 이미지와 연결함으로써 외교 행보에서의 성과를 극도화하려는 의도가 있어 보이는 배경이다.
◆고이즈미 전 총리 장남 연상시켜 젊은층에 어필?
다른 하나는 젊은 층에 대한 어필이다. 아베 총리의 안경 착용 모습과 관련해 주목을 받는 인물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장남인 배우 고이즈미 고타로(小泉孝太郞)다. 젊은층에서 인기 있는 고이즈미 고타로는 요즘 TV 광고로도 나오는 하즈키 루뻬(Hazuki Loupe)라는 안경 브랜드 CM에 나오고 있다. 아베 총리의 안경 착용을 광고홍보에서의 전통적인 기법인 헤비 로테이션(Haevy Roatation)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헤비 로테이션은 광고나 선전에서 반복 노출을 통해 친숙한 특정 이미지를 각인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기법을 말한다. 블로거, 네티즌 사이에서는 장기 집권 중인 아베 총리가 안경을 착용함으로써 친근한 이미지로 젊은 층에 어필하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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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브랜드 광고에 등장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장남이자 인기 배우 고이즈미 고타로. |
어쨌든 아베 총리의 안경 착용이 이미지 조작의 일환이라는 점이 다분해 아베 전 외무상처럼 한국 등 주변국을 배려하는 정책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도쿄=김청중 특파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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