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로는 직접적인 말보다 한장의 사진이나 연설 장소가 정치 지도자의 의도를 더욱 도드라지게 할 수 있다. 시 주석이 매년 신년사를 발표할 때마다 나오는 집무실 서가의 배경 사진이 주목을 받는 이유다. 바로 사진의 정치학이 갖는 묘미가 담겨 있어서다. 자신의 의도를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그러나 확실하게 청중에게 전달할 수 있는 훌륭한 정치적인 소통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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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주석 집무실에 배치된 15장 사진 배치도. 시 주석 오른쪽 뒤에 시 주석이 지난해 3월 헌법선서하는 모습과 미사일 구축함 창사함에서 장병들과 함께 한 모습의 사진이 보인다. CCTV 인터넷판 캡처 |
중국 중앙방송(CCTV) 인터넷판은 1일 시 주석이 전날 신년사를 발표하면서 공개된 중난하이(中南海·중국 고위인사들이 모여 있는 고급 주택가) 집무실에 놓인 사진을 소개하며 “지난해 중국 정치를 이해하고, 시 주석에게 다가가는 창구”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시 주석의 집무실에 놓은 15장의 사진은 정치적 고려를 따져 세심하게 배치됐다. 이번에 나온 사진은 평년과 비슷한 수준인 15장이다. 이 가운데 7장은 지난해 찍은 것이다. 시 주석 정면 바로 뒤 좌·우에는 당의 영도와 강군을 강조하는 사진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배치됐다. 우선 지난해 3월 17일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기간 중 시 주석이 헌법 선서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보인다. 시 주석은 당시 국가주석과 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재선출 된 후 헌법 선서를 했다. 중국 지도자로서는 역사상 첫 헌법 선서 장면이다.
그리고 눈에 띄는 것이 중국 미사일 구축함 창(長沙)함 갑판에서 해군 장병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지난해 4월 12일 시 주석은 하이난(海南)성 앞의 남중국해에서 해군 열병식을 참관한 뒤 중국 군인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 밖에 당과 군을 강조하는 사진은 시 주석의 오른쪽 책장에 놓여있다. 2017년 7월 중앙군사위가 처음 8·1 훈장을 수여하는 행사와 군복을 입은 시 주석이 건군 90주년 열병식 행사에 참석하는 사진이다. 또 2017년 10월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직후 최고 지도부 인사들과 함께 공산당 제1차 당 대회 개최지인 상하이를 찾아 입당 선서를 하는 모습의 사진도 있다.
시 주석이 9월 3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아프리카 협력포럼 정상회의’ 당시 아프리카 53개국 지도자들과 회의장에 함께 들어서는 장면의 사진도 한쪽에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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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주석 집무실 오른쪽 책장에 배치된 세 장의 사진. 2017년 7월 30일 군복을 입은 시 주석이 건군 90년을 맞아 대규모 열병식에 참석하는 모습의 사진이 보인다. CCTV 인터넷판 캡처 |
집무실 서가에 놓인 15장의 사진 가운데 4장은 시 주석 가족과 관련됐다. 군복 차림의 ‘청년 시진핑’ 사진과 함께 부친 시중쉰(2002년 별세) 전 부총리, 모친 치신 여사, 부인 펑리위안, 딸 시밍저 등이 나오는 가족 사진 4장이 정면 아래쪽에 배치됐다. 시 주석이 모친과 함께 손을 잡고 걷는 사진이나 몸이 불편한 시 전 부총리의 휠체어를 직접 밀며 가족과 함께 산책하는 모습 등은 시 주석의 인간적인 측면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지난해 4월 2일 시 주석이 베이징에서 열린 식목행사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있는 모습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베이징=이우승 특파원 ws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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