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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석주 "9·19 남북군사합의, 한반도 평화의 역사 바퀴 굴리는 힘" [세계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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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1-01 18:56:20 수정 : 2019-01-01 22:3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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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상호 적대행위중단 구역폭 설정 / 작전전문가 모여 치열하게 토론 결정 / 군사대비태세·경계작전 등 문제 없어 / 文정부 NLL 포기는 명백한 가짜뉴스 / 북 해주항로 열어주면 NLL 더 공고화 / 다만 5·24조치와 연관돼 연구 더 필요 / 동맹균열 기우일 뿐… 美, 韓 손 못놓아 / 국방개혁, 송영무 퇴진 상관없이 계속 / 4차산업혁명 기술, 국방강화 적용 필요 “9·19 남북 군사합의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국방개혁 2.0은 대한민국과 한국군이 가진 역사의 바퀴를 전진하게 하는 힘입니다.”

여석주 전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의 목소리에는 우리나라 국방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가득했다. 2017년 11월 그가 처음 부임했을 때 국방부 문민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예비역 육군 중장들이 독식해온 자리에 예비역 해병대 중령 출신 민간인이 임명된 때문이다.

재임 시절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도발이 끊이지 않은 ‘대결의 장’이 남북의 군인들이 비무장지대(DMZ) 군사분계선(MDL)에서 만나 서로 악수를 나누는 ‘평화 공존’의 시기로 변모했다. 덕택에 여 전 실장은 “하루에 600장의 서류를 읽었다”고 토로할 정도로 격무에 시달렸다. 이전 직을 수행한 예비역 육군 장성들과 달리 국방정책과 남북 군사관계를 보다 자유로운 시각으로 접근해 격변기 국방정책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퇴임하면서 훈장을 받은 것도 이와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서다.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의 한 사무실에서 여 전 실장을 만나 숨가뻤던 한반도 정세의 뒷얘기를 들었다.
여석주 전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이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사무실에서 9·19 남북 군사합의서 작성 배경과 그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실장에 부임했을 때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 문제가 논란이 됐을 때다. 한·중 군사교류도 냉각되는 등 여파가 컸다. 사드 논란이 봉합됐다고 보나.

“사드 문제가 완전히 봉합되려면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이 사라져야 한다. 다만 사드로 야기된 마찰음은 잦아들었다. 한·중 군사교류는 2017년 10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확대 국방장관 회담(ADMM Plus)에 참석한 송영무 당시 국방부 장관과 창완취안(常萬全) 중국 국방부장이 회담한 직후 교류가 재개됐다. 한·중 군사교류의 빈도는 회복됐으나 그 수준이 사드 이전과 질적으로 동일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9·19 군사합의서 준비 과정을 주도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역사를 살펴보면 원운동과 직선운동이 함께 이뤄지는 특성이 있다. 원운동만 하면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처럼 변화가 없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앞으로 굴러가려면 원운동을 직선운동으로 바꾸는 힘이 있어야 한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고 앞에 있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힘이 9·19 군사합의에 있다.”

―군사합의서를 두고 논란이 많다. 합의서 도출 과정에서 청와대가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말도 있고, 북한에 양보한 것처럼 보인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지 않다. 군사합의서 7대 이행과제는 2011년 남북 군비통제 추진계획에서 도출된 것이다. 다만 추진계획에서 상호 적대행위 중단 구역의 폭을 설정하는 문제는 국방부와 합참의 작전 전문가들이 모여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했다. 그 디테일을 만드느라 고민한 사람들이 군사합의의 진짜 공로자다. 세부사항은 기밀이라 밝힐 수 없으나 군사대비태세나 경계작전, 교육훈련 등에 문제가 없다는 것은 명확하다.” ―남북 군사공동위원회가 내년에 열릴 예정이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관심사다.

“분명한 것은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북한은 NLL을 준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군사합의에 대한 비판 중에 우리가 NLL을 포기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그건 가짜뉴스다. 평화수역 설정하면서 NLL을 팔아먹었다는 말도 있는데 평화수역은 설정되지 않았으니 사실이 아니다. 북한이 NLL을 기준으로 등면적 방식으로 평화수역 설정 등에 합의한다면 NLL 명문화의 시점이 될 거다.”

―북한이 과연 합의할까.

“상응하는 조치가 있다면 가능할 거라 생각한다. 해주 직항로가 상응조치가 될 수 있다. 해주는 주변이 연백평야로 둘러싸여 있어 물산(物産)이 풍부하다. 연백평야의 물산을 함경도 등 경작 면적이 좁은 곳에 공급하려면 항구로서 해주의 역할이 매우 크다. 그런 부분과 연계한다면 불가능하지는 않다. 지금은 해주에서 배가 출항하면 NLL과 황해도 장산곶 사이의 좁은 해역을 빠져 나와야 한다. 만약 우리가 해주 서남쪽 항로를 열어준다면 북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해주 직항로 문제는 북한 선박의 남측 해역 운항 및 입항을 금지한 5·24 조치와 연관되어 있어 이를 활용하려면 앞으로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평화수역 조성의 해법은 있나.

“NLL이 예민하니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송영무 국방장관 당시 평화수역을 만든다면 북한이 장비가 노후하니까 장비와 배는 우리가, 사람은 북한이 제공해 공동 조업하자는 아이디어도 있었다.”

해주 직항로와 서해 평화수역 공동조업 방식의 문제는 아직 표면화되지 않은 이슈임에도 여 전 실장의 발언은 거침이 없었다. 향후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데 있어 자신감이 묻어났다.

―한·미 연합훈련 유예로 동맹관계를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미는 1978년 이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연합군사령부를 갖고 있다. 사령부를 유지하는데 어떻게 동맹관계에 구멍이 생기나. 연합훈련을 하게 되면 전시증원을 훈련하는 것이다. 매년 전·후반기 두 차례 훈련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그 부분에서 영향은 있다. 하지만 구멍은 없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으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향후 전개 양상과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의 원칙은 주둔국이 부지를 제공하고 미국은 병력과 장비를 갖다놓는 것이다. 방위비분담금협정은 영어로 옮기면 SMA(Special Measures Agreement)라고 한다. 협정이 스페셜한 이유는 SOFA에서 예외적인 부분을 명시했기 때문이다. 땅만 주면 되는데 비용도 지불하니까. 분명한 것은 예외를 받아들일 때는 상한선이 있다는 점이다. 이해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서면 협정의 취지가 흔들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까지 압박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버틸 수 있는 한계가 있지 않겠나.

“(웃으며) 파트너로서 건전한 인식을 갖고 있으리라 믿는다.”

―한·미동맹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갈까. 미국의 패권은 어떻게 변할까.

“미국이 세계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두 가지 힘은 군사력과 달러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군사력 사용 방법의 변화는 필연적이다. 전 세계를 30분 안에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상황에서 물리적으로 보병부대를 전선에 배치하는 것에 회의적일 수 있다. 트럼프가 놓지 않는 것은 달러에 의한 헤게모니다. 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은 한국이다. 경제규모가 11위고 수출이 경제 기반이다. 수출=달러다. 미국 달러를 세계적으로 운용하는 데 이만큼 기여하는 나라도 없다. 미국의 세계전략에서 한국의 가치는 1945년 이후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일본의 군비 증강 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빠른데.

“동북아시아는 150년 동안 피를 흘린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미·일·중·러 4개국 지도자들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역사를 반복하지는 않을 거라 본다. 하지만 국가 간의 관계를 자신의 정치적 입지 다지기에 이용하는 정치 지도자가 있는 것은 우려된다.”

―레이더 논란도 있고 그래서 국내에서는 앞으로 한·일 군사협력은 요원하겠다는 우려가 있다. 일본에서는 한국과의 관계 가 회복 안 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2002년 우리가 동티모르에 상록수부대를 보냈을 때를 기억한다. 일본은 처음으로 파병했는데 공병대가 왔다. 둘이 붙어 있어서 걱정이 많았다. 현지 작전지도를 나갔는데 기우였다. 축구로부터 시작해서 김치와 오메부시 나눠 먹고 잘 지내더라. 현해탄 두고서는 싸우는데 공동의 목적으로 해외에 나가면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지 않나 싶다.”

―송영무 장관이 퇴진하면서 국방개혁 2.0이 좌초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있다.

“국방개혁 2.0은 누구 한 사람에 의해 좌절되거나 멈출 일이 아니다. 국방개혁 2.0의 틀이 만들어질 때 정경두 현 국방장관은 합참의장으로서 수뇌부 일원이었다. 정 장관 본인도 국방개혁 2.0을 지속해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송 전 장관 퇴진으로 개혁이 좌초할 우려는 안 해도 된다.”

―재임기간을 돌이켜보면 아쉬운 점은?

“국방부는 21세기에 구태의연한 업무방식을 답습하고 있다. 국방부만 그런 건 아니지만. 제 역할은 구태를 깨는 것인데 깨기에는 너무 바쁘더라(하하). 그래서 종이 사용량을 좀 줄였다. 지구 환경에 일조했지(하하).”

정리=박수찬 기자 psc@segye.com

대담=박병진 외교안보부장

여석주 전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1963년 서울 출생(56) △중경고 △해군사관학교(40기) △경남대 정치학 석사 △주미 국방무관부 해병무관 △평화안보포럼 사무처장 △세코중공업 대표이사 △스탠다드쉽핑 대표이사 △국방부 국방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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