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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피해목은 쓸모 없다?… 내부 목질·성능 큰 차이 없다! [그린 라이프]

입력 : 2018-12-21 14:00:00 수정 : 2018-12-20 19:3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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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 제재 활용 성공 / 기존에는 벌목∼식재 1년 넘게 걸려 / 산사태 우려에 피해목 방치가 관행 /‘재질 푸석’ ‘재수 없다’ 속설도 발목 / 유럽선 가공 수출… 발전소에 쓰기도 / 2017년 5월 동해안 산불로 1000ha 피해 / 조사팀 꾸려 매각 가능 수량 신속 확인 / 진화 4개월 만에 13억에 ‘입목’ 매각 / 매수자가 벌채… 92억 예산 절감 효과
유독 건조했던 지난해 5월6일 강원도 삼척과 태백, 강릉 등 동해안 지역에 대형 산불이 잇따라 발생했다. 소방헬기 등이 동원돼 진화에 나섰지만 바람이 강한 탓에 불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위험을 무릅쓴 야간진화 작업까지 이어진 끝에 불은 발생 나흘 만에야 겨우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이미 화마는 여의도 면적의 3.5배에 달하는 1000여㏊(국유지 약 500㏊)의 산림을 훑고 지나간 뒤였다.

한창이어야 할 5월의 울창한 신록 대신 볼품없이 검게 그을린 나무들을 보면서, 주민들만큼이나 망연자실했던 것은 산림청 직원들이었다. 험한 산속을 헤치며 영양제를 투여하고, 방제약품을 뿌리며 노심초사 가꿔왔던 백두대간 수목들의 처참한 최후는 눈으로 보고도 믿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허탈한 한숨과 깊은 탄식이 이어지던 그때 그들 중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저 나무들을 활용할 수는 없을까?”
 
산불 피해를 입은 산림의 모습. 국립산림과학원의 연구에 따르면 피해목의 껍질은 타거나 그을리지만 내부 목질은 일반 목재와 큰 차이가 없다

◆“산불피해목 제재용 활용도 높아”

기존의 산불피해 복원 과정은 피해 지역의 조림 계획을 세우고, 산불피해목을 베어낸 뒤, 사방공사 후 묘목을 심는 등의 과정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의사결정 지연, 예산 문제 등으로 조림 사업을 시작하는 데만 1년 이상 걸리는 게 일반적이었다. 또 섣불리 산불피해목부터 베어냈다가는 토사 유출, 심한 경우 산사태 등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우선은 피해목을 ‘방치’하는 것이 관행이기도 했다.

피해목을 활용해보려는 시도도 이미 있었다. 하지만 “산불피해목은 진이 빠져 푸석푸석하다”, “불을 먹은 나무는 재수가 없다”는 속설이 발목을 잡았다.

이런 이유 탓에 여의도 면적 약 27배에 달하는 7957㏊의 피해가 났던 2000년 동해안 산불 때는 전체 피해목 58만㎥ 중 피해 정도가 미미한 0.4%(2140㎥) 정도만 산불 발생 1년 뒤에야 매각됐다. 이후에도 몇 차례 시도가 더 있었지만 2000년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피해목 활용 여부에 대한 명확한 답이 나온 것은 아직 아니었다. 피해목으로부터 경제적 가치를 최대한 회수할 수 있는 또 한 번의 도전이 필요했다.

산림청은 2000년 산불 이후 진행했던 연구 자료와 해외 사례를 몽땅 그러모았다. 2005년 국립산림과학원이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산불피해목의 껍질은 까맣게 타거나 그을리지만, 내부 목질은 제재용으로 사용하기에 문제가 없었다. 수관(樹冠, 나무의 가지와 잎이 달린 부분)이 전소한, 피해 정도가 심한 목재도 일반 목재와 비교해 재질 및 조직 변이도 발견되지 않았다. 또 강도 및 목재성능 등에도 차이가 없었다.

해외 연구에서도 수종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죽은 나무가 썩기 전인 1년 안에 피해목을 활용할 경우 제재용으로 활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미 피해목을 가공해 가구 제작 등에 활용하는 미국의 경우 대규모 산불이 발생하면 오히려 피해목을 활용한 목재의 공급이 늘면서, 전체 목재의 가격이 크게 떨어질 정도로 활용도가 높다. 유럽은 피해목을 화력발전소를 활용하는 다른 국가에 목재 칩의 형태로 가공해 수출하기도 한다.

◆관행·속설 털어내니 세수 늘고, 예산 절감

산림청은 산불 진화 완료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목재 산업계 관계자들과 함께 현장을 답사하고, 목재이용 및 산림복구 전문가들도 불러모아 연구 결과와 해외 사례들을 설명했다. 간담회에서는 산불피해목의 상당수를 보드용 또는 목재 펠릿용으로 사용이 가능한 것으로 의견이 모였다. 목재업체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산림청은 산불 진화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산불피해목 조사팀을 꾸려 매각 가능한 수량 조사에 나섰다. 활용할 수 있는 목재는 약 5만3865㎥에 달했다. 우리나라 한해 전체 목재공급량의 1.4%에 해당하는 양이다. 산림청은 산불 진화 4개월여 만인 지난해 9월 이를 목재업체에 13억5000만원에 매각했다. 세수 증대 성과를 거둔 셈이다. 이와 함께 벌채하지 않은 ‘입목’(立木) 형태로 매각하면서 예산 절감 효과도 가져왔다.

산림청 목재산업과 김정오 주무관은 “입목 매각은 매수자가 직접 벌채를 하기 때문에 추후 산불피해목 제거 등의 긴급벌채 및 조림지 정리를 위한 정부 예산이 들지 않게 된다”며 “관련 예산을 산출해본 결과 약 92억1000만원이 절감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산림청의 이러한 노력은 올해 정부부처의 예산 절감 및 수입증대 최고 성과로 꼽혔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5일 2018년도 하반기 예산성과금 심사위원회 심의 결과 산림청의 ‘산불 피해목 신속한 매각으로 세입 증대’를 각 부처가 제출한 사례 56건 중 1위에 선정돼 성과금 4550만원을 받았다. 예산성과금은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특별한 노력을 통해 재정개선 효과를 달성한 기관과 공무원 등에 지급된다.

임상섭 산림청 산림정책국장은 “이번 사례를 계기로 산불피해목 이용에 대한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산불피해목에 대한 연구도 진행할 계획”이라며 “향후 산불피해목 이용에 따른 재정개선 효과는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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