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는 왕이 된 후 문종, 단종 이후 추락된 왕권 회복을 정치적 목표로 삼고 육조의 판서들에게 직접 명령을 하달하는 육조직계제(六曹直啓制)를 부활시켰으며, ‘경국대전’과 ‘동국통감’과 같은 편찬 사업을 주도해 왕조의 기틀을 잡아 갔다. 세조가 왕권 강화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정치를 펴 나가는 과정에서 특히 주목되는 점은 자주 술자리를 베풀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실록의 ‘술자리’ 검색어 974건 중에서 ‘세조실록’의 기록이 무려 467건이나 나타나는 것에서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술자리 횟수에 관한 한 세조는 조선 왕 중 최고였고, 그만큼 술을 즐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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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
1455년 8월 16일 세조는 공신들에게 잔치를 베푸는 자리에서 왕의 술상인 어상(御床)에서 내려와 왼손으로는 이계전을, 오른손으로는 신숙주를 잡고, 서로 술잔을 주고받자고 말했다. 왕의 돌출 행동에 놀란 이계전이 엎드려서 일어나지를 않자, 세조는 “우리는 옛날의 동료이다. 같이 서서 술잔을 주고받는 것이 어찌 의리에 해롭겠느냐”면서 다가섰고, 신하들은 어색해하면서도 세조의 뜻을 따랐다. 자신과 공신들은 어려움을 함께 한 동지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서로 잔을 나누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이어 세조는 특정한 사람을 지목해 춤을 추게 했고, 화기애애한 술자리 분위기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경복궁의 사정전에서 아침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도 술자리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보이고, 입시한 신하는 물론이고, 호위하는 군사에게까지 술자리를 베풀어주기도 했다. 술자리를 정치의 장으로 만들어 갔던 세조. 술자리를 통해 깊은 정을 쌓았기 때문일까.
세조는 임종 직전에 원상제(院相制)를 만들어 신숙주, 한명회, 정인지와 같은 측근 공신이 자신의 사후에도 영향력을 미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원상제는 이후 세조의 공신 세력이 예종과 성종 시대를 거치며 훈구파(勳舊派)가 돼, 그 기득권을 대를 이어 누리는 길을 열어 주었다.
이번에 전시된 어진은 세조에 대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이미지보다는 훨씬 온화하고 후덕한 모습이다. 조선시대 왕의 어진은 말 그대로 터럭 하나도 놓치지 않고 생긴 참 모습을 그렸던 만큼, 세조의 실제 모습일 가능성이 크다. 온화한 인상 속에 감추고 있었던 권력욕과 비정함, 그리고 왕이 된 후 술자리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개선하려 한 모습까지 세조의 여러 측면을 함께 생각하며 세조 어진을 접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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